보이스 피싱 피해자입니다.
나는 소심하다.
학창 시절, 괜히 나대다가 찍히거나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지냈다.
학교든 집이든 하지 말라는 건 안 했다.
그게 편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기!
그런 내가 파출소는커녕 경찰서에 갈 일이 있었을까? 만무하다.
경찰서에 나오며 손에 쥔 건 팸플릿 한 장.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완전 '운수 좋은 날'이네.
경찰차도 처음 타봤다.
경황없이 와서 우산도 없었다.
집까지 네 정거장 거리.
나는 그냥 걸었다.
자신 탓 하지 마세요. 본인 잘못 아닙니다.
형사는 그렇게 말하며 피해 상담 안내지를 건넸다.
혹시 너무 힘들면 꼭 상담받아 보라고.
얼마 전 뉴스에서 봤다.
TV프로그램 '무물보' 신청자로 출연했던 20대 ㅇㅇㅇ양 보이스 피싱 피해로 자살.
그런 사건이 많아서였을까.
형사는 나가려는 나에게 덧붙였다.
"혼자 살아요? 꼭 바로 집에 들어가세요."
코로나 때 시작한 라탄공예 공방이 힘들어지던 시기,
친구가 보내준 문자 하나.
[정부 저이자 대출/국민은행]
정부 지원이 많았던 때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신청 링크를 클릭한 순간, 이미 당했다.
설명을 듣고, 자료를 보내고, 신분증 사진까지 넘겼다.
이후 롯데카드 대출 확인 전화.
의심은 들었지만, 이미 내 휴대폰엔 피싱앱이 깔려 있었다.
내가 거는 모든 전화는 그들에게 연결됐다.
나는 분명히 물었다.
"이거 보이스 피싱 아니죠? 사기 아니에요?"
재차 확인했고, 여러 번 의심했다.
그럼에도 결국,
당. 했. 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사기 아니라고,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니!
잔뜩 쪼그라든 조바심과 들뜸에 미끼를 덥석 문 것이다.
한동안 멍했다.
왜? 왜? 왜?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형사 말대로 나는 결국 내 탓을 했다.
피해자는 분명 나인데,
가장 원망한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런 거 당하는 사람은 바보.'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퉁퉁 튀어올라 목구멍을 막는다.
숨이 막히고, 토할 거 같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트라우마란 녀석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그때의 나에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추스른다.
그날 언니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돈으로 피해 본 게 가장 적은 피해래. 몸 안 다치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해."
피해금은 언니에게서 빌린 돈이었다.
위로도 언니가 해줬다.
정작 피해자는 내가 아니라 언니인데, 나를 달래주었다.
경찰서에서 나오던 날, 한강을 거닐고 싶었다.
물에 몸을 던지면,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목숨값은 언니에게 있다.
죽지 못한다.
다 갚기 전까지는, 살아야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심장이 조이고 손끝이 떨린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 잘못 아니에요. 당신 탓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