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종종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눈과 귀는 무시당한다. 혹은 자주.
우리 집도 일요일인 걸 아는지, 유난히 조용한 식탁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일까, 나기 전일까.
어젯밤,
나는 또 산책이라도 다녀온 걸까. 몸이 찌뿌둥하다.
머리가 무겁다.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내 마신다.
머리가 아프다. 차갑다. 이제 좀 정신이 차려진다.
"아빠는?"
며칠 정도 붙어 있었던 걸까, 반쯤 뒤집어진 반창고가 엄마의 검지 손가락에 붙어 있다.
그 손가락으로 쉿 하는 동작을 한다.
"주무셔. 조용히 해."
응, 알았어.라는 표정을 한 뒤 고개를 끄덕인다.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박지혜, 방으로 잠깐 들어와."
역시 귀가 예민하다.
엄마의 눈썹은 팔자 모양으로 하고 입은 안도하라는 듯 위로 올리며 말한다.
"괜찮아. 들어가 봐."
손에 쥐고 있던 유리컵을 내려놓은 뒤 아빠방으로 들어간다.
"이리 와."
같이 눕자며 손짓을 한다.
"이제 일어났는데..." 난 우물쭈물 용기도 없이 허공에 내뱉는다.
씁, 하는 입모양과 함께 난 바로 아빠 옆에 눕는다.
꽈배기 마냥, 아니 레슬링인가, 나를 두 팔과 두 다리로 똬리를 틀어 감싼다.
아빠는 가끔 나를 불러 아무 말 없이 안고 잔다.
나는 자는 척을 한다.
충전기도 아니고, 이건 뭐람.
눈만 끔뻑끔뻑,
이따 뭐 하고 놀지, 숙제는 언제 하지, 아무래도 공부는 하기 싫다.
"이제 그만 나가라." 아빠의 한마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무서운 건가, 어색한 건가, 지금은 불편한 게 맞는 거 같다.
방문을 소리 안 나게 꾸—욱 눌러 닫는다.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 조용하고 오붓하게 밥을 먹는다.
이런 게, 행복인가.
그날은,
기억의 필름을 누가 싹둑 잘라 놓은 거 같다.
감정만 남아 영상과 이미지로만 떠다녔다.
"너, 바람 폈지? 솔직히 말해? 누구야?!"
아빠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천장을 찌른다.
"아니야. 아니라니까, 왜 안 믿어!"
엄마의 목소리가 버둥거린다.
아빠의 크지 않지만 도톰한 손에, 엄마의 머리 채가 한 움큼 쥐어 있다.
무슨 말이 오간 걸까. 나는 그저 소리 지르며 아빠의 다리를 붙잡는다.
발길질 한 번에, 금세 나가떨어진다.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엄마를 지킬 만큼, 힘이 세졌으면 좋겠다.
찰나,
아빠의 손아귀에서 잠시 벗어난 엄마는 닫혀 있던 현관문을 열고, 맨발로 뛰쳐나간다.
아빠도 씩씩 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고 따라나간다.
문은 잠겼다.
엄마가 잠금 버튼을 누르고 도망쳤다.
똑똑하다, 그 와중에.
최대한 그의 돌아간 눈에 안 띄게, 구석으로 숨어 귀를 막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쨍그랑—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진다.
힘줄이 울퉁불퉁한 팔뚝에 피가 뚝뚝 떨어진다.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기절했을 텐데.
하지만 드라마가 아니니까, 나는 끝까지 본다.
아빠는 총알처럼 뛰쳐나갔다.
엄마는 사라졌다.
빨갛게 변한 바닥에는 유리 조각들이 비벼져 있다.
열린 문은 오래 덜컹거렸다.
나는 끝내, 닫지 못했다.
맞이하는 건지, 내보내는 건지 모른 채.
문은 열려 있고, 나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