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방관자, 밤의 개입자.

방관자

by 박나킨

학교는 늘 유난스럽다.

떠드는 소리, 웃는 소리, 싸우는 소리...

나는 그 소리 어느 하나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혼자만의 몽상이다.

그때만큼은 내 뜻대로 할 수 있어서, 오히려 행복하다.


집은 언제나 화가 나 있다.

물컵, 창문, 그림자까지도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그날의, 새벽 공기는 눅눅했던 것 같다.

나는 걸은 건지, 아니면 끌려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난간 그림자가 발밑에서 일렁였고, 술 냄새가 바람에 섞여 코끝을 파고들었다.

차 소리가 쏴 악,

내 손이 쒸 익, 그의 등을 살짝 스쳤다.

그림자가 흔들리며 힘없이 툭, 아래로 떨어졌다.

끽—쿵. 금속과 고무의 마찰음.


그리고 이어지는 삐걱거리는 리어카 바퀴 소리.

낯익은 그림자가 멀리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눈을 떴다. 침대 위였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이상한 꿈을 꿨다.

몸 안에 꿈의 잔여물이 끈적하게 남은 기분이다.


"은혜엄마. 집에 있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가 소리에 놀라 급히 물기를 닦으며 나온다.

분홍 티셔츠에 남은 젖은 손자국이 진분홍으로 번진다.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 웬일이세요?"

"아, 그냥.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길래... 걱정 돼서."

까만 단발머리 위로 설탕을 뿌린 듯 흰머리가 얹힌, 근처 편의점 아줌마다.

코끝에 걸린 안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떨어질 듯, 붙어 있다.


이사 전엔 슈퍼, 이사 후엔 편의점. 언제나 우리 집과 가까운 곳.

엄마가 가끔 하소연을 하던 상대였다.

가끔은 아빠에게 쓴소리도 했지만, 되려 욕만 먹고 돌아온 뒤부터는 짧은 위로 몇 마디로만 응답했다.


"아... 들어와서 커피 한 잔 하세요."

엄마는 반갑지도, 싫지도 않은 딱 적당한 말투로 그녀를 맞이한다.


가끔 난 그런 생각을 한다.

어른들이라고 모두 힘이 있진 않구나.

경찰도, 동네 아줌마도, 친척들도.

아빠를 말리거나 혼내지 못한다.

몇 번 본 적은 있다.

결국 그는 더 화를 냈다.

거의 이긴다. 악을 미친 듯이 쓰니까.


"은혜엄마, 근데 지혜는 아직도야?"

아줌마의 안경이 본드로 붙여둔 것처럼 떨어지지 않고 흔들린다.


"뭐... 가요?" 엄마는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건가. 다시 되묻는다.

"그, 왜 몽유병인가. 어젯밤에도 스윽 와서 과자 산다더니 돈 없다고 그냥 갔어."

"아... 가끔 한 번씩. 심하진 않고, 크면 저절로 없어진다고 하길래."

난처한 듯 보였다. 엄마도, 나도.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엄마의 말에 동조한다.

"응. 그래, 크면 없어진다 하더라. 근데 전에 살 때도 한두 번 그랬었잖아. 왜."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서 귀를 쫑긋거린다.

꿈이 아니었나.

창밖에서 검은 그림자가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다 눈이 마주친다.

옆집 할아버지.

폐지 리어카에 기대어 있다.

회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고 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나 역시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는 리어카를 밀고 사라진다.

바퀴 소리가 바닥을 긁는 듯,

마치 기억을 끌어당기는 소리처럼 들린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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