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의 그림자

방관자

by 박나킨


뒤뚱거리는 남자의 모습에서 아빠를 봤다.

아빠가 맞는 걸까.

나는 꿈을 꾸는 걸까.


며칠째, 꿈에서 남자의 등이 따라다녔다.

엄마는 내가 새벽에 돌아다니는 건 못 봤다고 했다.

아빠가 죽은 뒤로는, 그렇다고 했다.


"괜찮으냐?"

옆집 할아버지다. 아빠의 장례식에서 보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

주름들 사이에 파 묻힌 입술이 약간 올라간다.

그 속엔 알 수 없는 굳은살 같은 게 보인다.

미소일까, 걱정일까.


"안녕하세요... 네..."

난 안심의 미소를 억지로 짓는다.


어제 하굣길,

경찰이 할아버지에게 질문을 퍼붓는 걸 봤다.


"밤 11시 반경, 박준모 씨 뺑소니 사건이 있던 현장 CCTV에 지나가시는 게 찍혔더라고요.

혹시 그때 목격하신 게 있으신가요?"


"아침에 뭐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밤에 침침해서 뵈는 것도 없구먼. 기억에 없수다."

횡설수설 같았지만, 진짠지 가짠지 알 수 없었다.


"자, 보세요. 박준모 씨가 떨어지는 순간, 할아버지 시선이 위쪽에 고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 위에 다른 누가 있었던 거죠?"


경찰은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시험지 정답을 보채는 선생님처럼.

할아버지는 끝내 정답을 말하지 않았다.


"거, 일 없다니까. 뭐가 있었나. 술 취해 지뿔에 떨어졌겠지."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봤다.


경찰은 한 발 물러서듯 명함을 건넸다.

혹시라도 기억나는 게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명함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가래침도 시원하게 뱉었다. 명중이다. 명함 위에 안착했다.


경찰은 엄마가 살려 달라고 할 땐 입을 다물었다.

아빠가 죽고 나니, 질문만 늘었다.


언니가 날아가던 날,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엄마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표정이 없다.


할아버지는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게 방관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지키려는 걸까.


기억은, 자주 침묵 속에 숨는다.

눈을 감은 척, 귀를 막은 척, 모르는 척.


그날 밤,

나는 또다시 그 현관문 앞에 선다.


닫힌 문이 왜 이리 무거울까.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그저 얹어만 본다.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그날들처럼.


손끝에 차가운 쇠맛이 맴돌았다.

내 그림자가 문틈에 깔렸다.

그 옆에 또 다른 그림자들이 포개져 있었다.


방관의 그림자는 그렇게 형체 없이 떠다니고 있다.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모두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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