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울메이트 Nov 29. 2024

캐리비안 바다에서 인기인이 되다

도미니카 공화국 - 바야히베 해변

 산토 도밍고의 동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  로마나.  수영하러 갔는데 막상 가보니 가까이엔 적당한 해변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동네 산책만 하고 내일 버스를 타고서 좀 더 떨어진 바야히베라는 바다에 가기로 했다.

 마트에서 간단하게 장을 봐오는데 색의 풍성한 곱슬머리에 선글라스를 얹고, 길쭉한 다리로 횡단보도 앞에서 노란 바이크를 지탱하고 선 한 바이커가 보인다. 시선을 끄는 강렬한 노란색의 바이크를 타고 도자기처럼 빛나는 피부를 지닌 그녀는 마치 모델처럼 보였다. 그녀에겐 그저 지나는 일상이겠지만 우리의 눈에는 잘 찍은 한 폭의 엽서 사진과 같은 순간이었다.



 바야히베 해변은 야자수가 드리우는 그늘과 하늘을 그대로 빼닮은 색을 가진, 그야말로 우리가 그리던 캐리비안의 바다였다. 른 바다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동해바다, 동남아시아의 바다, 지중해 등 여럿이 떠오르지만 그 어느 바다도 같은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캐리비안의 바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눈이 부시는 바다라고 할까. 가리는 구름 한 조각 없이 수직에 가깝게 내리 꽂힌 뜨거운 태양광, 그 아래에 반짝이는 바다는 한낮인데도 수만 개의 별을 뿌려놓은 것 같다.


 높게 솟은 야자수 옆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깃발이 나부낀다. 아침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다. 우리도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풍덩 들어갔다.

"앗 뭐야. 물이 엄청 따뜻한데?"

 아뿔싸. 물이 따뜻할 줄이야. 더위를 식히려고 왔는데 온도가 체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코 엘 자디다의 바다, 그중에서도 시디 부지드는 오소소 닭살이 돋을 만큼 물이 차갑기로 유명해서 한여름에도 5분 이상 수영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바야히베는 그와 정반대로 미적지근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물속에 오래 머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좋았다.



  하나는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다른 해수욕장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모래도 자갈도 아닌 진흙이었으며 색이 흰색에 가깝고, 우리나라의 갯벌보다도 한층 더 부드러워 만졌을 때 기까지 느껴진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다가스카르 해변마을 주민들이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고 밝은 색 진흙을 얼굴에 바르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진흙과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놀았을까. 갈수록 묘하게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더니 곧 여러 명의 작은 얼굴들이 나를 에워쌌다.

"뭐, 뭐야."

 크고 동그란 눈에 귀엽게 볼록 나온 이마를 가진 아이들 한 무리였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나?

"헬로."

일단 인사를 하고 봤다.

"헬로~!"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헬로 하고 같이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참새들의 질문 공격 시간이 이어졌다. 스페인어라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 사이 몇 마디 알게 된 스페인어 단어들을 짜 맞추어 눈치껏 소통이 가능했다.

"어디서 왔어? 중국?"

"아니 코리아."

"코리아~? 와아아."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두배로 높아졌다.

"몇 살이야?"

"나 몇 살이냐고? 서른 살이야."

"30? 우와아."

이제 목소리 한 세배는 높아졌다. 아마도 내가 학생인 줄 알았나 보다. 동양인, 특히 한국인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편이라 대부분이 놀라워한다.

"너희는 어디서 왔는데?"

"우리는 쿠바에서 왔어. 학교 선생님이랑 같이 왔어."

아하. 이웃나라 쿠바에서 수학여행을 온 모양이다.

"우와 정말? 나도 곧 쿠바 놀러 갈 건데."

그렇게 서로 나이도 트고, 통성명도 하고, 말은 안 통하지만 금방 친해져서 물놀이도 같이 했다.


 같이 놀다 보면 한 친구가 "야야, 이리 와 봐. 여기 한국인 있어." 하고 저쪽에서 놀던 친구들 한 무리를 또 부른다. 아이들의 선생님도 오셔서 인사하고, 중학생으로 보이는 조금 큰 애들도 와서 인사한다. 그렇게 그날 바다에 있던 청소년 거의 모두와 한 마디씩 섞어본 것 같다. 어린아이들은 내 얼굴을 만져보고 머리카락도 쓰다듬어 본다. 저 망망대해 건너에서 온 동양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퍽 신기했을 만도 하다. 이렇게 되니 말하랴 수영하랴 애들이랑 놀아주랴 힘이 이만저만 든 게 아니었다.

"헥헥.. 얘들아 나 좀만 쉬고 올게."

난 결국 숨 좀 돌리러 물에서 나와 나무 그늘로 도망쳤다. 근데 아이들도 우르르 나를 따라서 같이 모래밭으로 나와 버린다.

"하하하, 그래 같이 사진이나 찍자."

그렇게 쿠바에서 온 꿈나무들과 한국에서 온 다 자란 나무의 단체사진이 탄생했다.


동양인으로서 캐리비안의 한 해변에서 유명인사 되기, 참 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