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를 다니다 보면 우리처럼 장기 여행을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한두 나라만 집어서 짧게 오는 여행자들도 있지만대부분이, 특히 다른 대륙에서 온 여행자들은 멀리서 힘들게 온 만큼 최대한 여러 나라 방문을 계획하고 오는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들과 지금까지 다닌 중에 어느 나라, 어느 도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면 꼭 언급되는 도시가 '리우 데 자네이루'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주로 '치안'이다.
"멕시코 시티가 아무리 위험하다지만 리우 데 자네이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키토, 리마, 라 파즈 등등 모두 조심해야 하는 곳들이지만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살아남았다면야.. 괜찮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대체 리우 데 자네이루는 어떤 무시무시한 곳이기에?
로시나 빈민가
좀처럼 안 그러시던 시어머니는 우리가 브라질에 내리던 날부터 거의 매일같이 안부를 물어보셨다. 나도 부모님께 하루 이틀 간격으로 저희 잘 있다고 생존신고를 하곤 했다.
어딜 가도 겁 없던 남편이 리우 데 자네이루에 오자 극도로 예민하게 소지품을 챙기고 주변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솔직히 여기선 나도 우리의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겠어."
항상 위험하다고 말리는 쪽은 나고, 호탕하게 웃으며 뭐든지 괜찮다고 하는 쪽이 남편이었는데. 남편 입에서 먼저 이런 말이 나오니 나도 같이 긴장을 했다. 차고 있던 액세서리는 조금이라도 값나가는 것이면 빼두었고, 옷도 일부러 튀지 않고 허름해 보이는 걸로(사실 비싼 옷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하하) 입고 다녔다. 리우에서 총이나 칼을 든 강도를 만났다는 수많은 경험담들을 들었기에 좀 과하다 싶어도일단 몸을 사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저 멀리 날으는 비행기를 가리키며. 비행기를 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리우 데 자네이루의 가장 유명하고 번화한 해변, 코파카바나. 날이 맑은 여름이면 제주바다 못지않은 푸른 바다색을 볼 수 있고 피서를 온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진다고 한다. 몇 년 전 남편이 왔을 땐 일 년 중 코파카바나가 가장 빛나는 한여름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날도 좀 춥고 하늘도 흐려서 그 모습을 볼 순 없어 아쉬웠다.
밤이 되면 코파카바나의 긴 해변에 낮 못지않게 밝은 불빛이 켜지고 수많은 포장마차와 야외 펍들이 문을 연다. 눈앞에 펼쳐진 현란한 풍경에 마음이 들뜬다. 모래사장에는 노래하는 가수들을 둘러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맨발로 리듬을 타며 춤을 춘다. 매혹적인 멜로디, 흥겨운 삼바리듬, 격한 몸짓이 아니라 살랑살랑 발만 움직이는데도 나까지 덩달아 박자를 타게 만드는 춤사위. 그들은 훌륭한 춤꾼들이었다.
코파카바나의 밤
좀 더 걷다가 들어가려는데 우리 근처에서 산책하시던 두 아주머니들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우린 포르투갈어를 못해서 무얼 원하시는지 한 번에 알아듣진 못했지만 번역기와 눈치를 이용해서 말씀을 들어보니 사진을 찍고 싶으신데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오신 거였다. 두 분의 인상이 선해 보였고(인상으로 판단은 절대 금물이지만!) 꿍꿍이를 갖고 접근하는 모양은 아니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경계를 완전 풀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돈 도와드릴 수 있지 싶었다.
"저희가 사진 찍어서 보내드릴까요?"
"그럼 정말 고맙죠!"
그렇게 두 분 사진을 찍어드리고 둘 중 한 분의 메신저 연락처를 받았다.
"앗 근데 연락처가 메신저에 안 뜨는데요?"
"아 그래요? 이 번호가 아닌가.."
몇 번 더 번호를 바꿔서 찍어 보았지만 틀린 번호였다. 아마도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래서 쪽지에 우리 번호를 적어드렸다.
"댁에 가셔서 번호 저장하시고 연락 주세요. 사진 보내드릴게요."
별일 아니었지만 두 분은 정말 고마워하셨다. 며칠 뒤 폰으로 연락이 왔고 우린 사진을 보내드렸다. 사실 그날 난 두 분과 대화하는 중에도 못 미더워서 이상한 낌새는 없는지 곁눈질로 두 분을 계속 살폈다. 자꾸 전화번호를 틀리실 때도 '과연 순수하게 번호를 잊어버리신 걸까. 아님 혹시 일부러 우리 번호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저러는 거 아닐까?'하는 의심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후에 사진을 받고 기뻐하시는 답장을 받고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리우 데 자네이루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브라질은 마트의 물가가 우리나라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무엇보다 소고기의 가격은 거의 절반이었다. 외식을 해도 크게 부담스러운 비용이 들진 않지만, 숙소에 주방도 있겠다 오늘 저녁은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스테이크와 감자계란범벅을 만들어 먹었다. 둘 다 남편이 만들었는데 놀랍게 맛있었다. 다음날은 내가 토마토 스파게티를 했지만 방울토마토 대신 큰 토마토를 썼더니 시큼하기만 하고 단맛이 부족해서 완전 실패였다. 한국에선 방울토마토가 비쌀 땐 큰 토마토로 대신해도 무리가 없었는데 브라질의 큰 토마토는 단맛이 거의 없다. 혹시 브라질 여행 중 우리처럼 토마토 요리를 하실 분들은 방울토마토를 쓰시길 추천드린다.
다음날엔 그 유명한 셀라론 계단을 방문했다. 칠레에서 온 예술가 호르헤 셀라론이 1990년 경 만들기 시작하여 2013년 경 완성한 계단이다. 처음엔 폐타일을 가지고 만들다가 점차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각국에서 타일을 기증하여 마침내 전 세계를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특별한 계단이 완성되었다. 타일 하나하나를 붙여갈 때마다 셀라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 안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예술로써 세계를 연결하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셀라론 계단
셀라론 계단의 태극기
셀라론 계단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피라미드 모양의 거대한 건물이 나온다. 밖에서 보기엔 공장 같기도, 독특한 디자인의 박물관 같기도 한 것이 무슨 용도인지 짐작이 안 간다. 이는 바로 매트로폴리탄 대성당이다. 마야의 피라미드 모양을 본떠 지은 성당이라고 한다. 외부는 다소 삭막해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가자 전면에 천장까지 높게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성화와 함께 위가 뚫린 원뿔 형태의 공간에 소리가 공명되어 웅장함이 더해졌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리우에서도 치안이 안 좋은 구간에 속하는 곳이라 잠시만 걸어도 등골이 싸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곳에서 몇 발짝만 더 가면 이렇게 성스러운 공간이 나온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리우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겁먹었던 마음은 차츰 무뎌졌다.
"파벨라 가는 거 우리끼리 한번 해볼까?"
빈민가라는 뜻의 파벨라는 리우 데 자네이루의 곳곳에 있는데 그중 로시나 파벨라는 관광객들이 방문해도 좋을 만큼 비교적 안전(?)하여 현지 가이드를 동반한 관광팀이 하루에도 여럿 방문한다. 로시나 파벨라의 주민들도 이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있기에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보통은 가이드와 함께 가는데 간혹 혼자서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여 우리도 그렇게 해볼까 싶었다. 비용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파벨라는 브라질 내에서도 우범지대이다. 아무리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로시나 파벨라라 하더라도 우리 둘이서만 가는 게 과연 괜찮을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며칠 리우에 머물렀던 그동안에 간이 커진 건지우린 마음을 굳게 먹고 숙소를 나섰다.
로시나 파벨라로 가려면 일단 지하철을 타고 파벨라 근처 역에서 내린다. 그다음 역 앞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 타고 파벨라의 오르막길을 달려가면 된다.
파벨라 올라가는 길
우리의 목적지는 파벨라의 한 전망 좋다는 식당 겸 커피숍. 가이드 없이 파벨라를 걸어 다닐 만한 깡은 없어서 오토바이를 내리자마자 커피숍에 쏙 들어가 전망대에서 커피만 한잔 하고, 버스를 타고서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로시나 파벨라의 Novo Visual Restaurante 전망대
커피를 다 마시고 나와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조금 걸어야 했다. 무서워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땅만 보고 걷다가 남편이 괜찮다며 안심시켜주어 고개를 살짝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벨라라고 하면 행인들과 눈도 못 마주칠 것 같은 어둡고 살벌한 거리 풍경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파벨라의 얼굴은 브라질의 여느 곳들과 다를 게 없었다. 주민들도 친절했고 스쿨버스를 타고 오는 아이들의 웃음은 천진난만했다. 심지어 음식까지 맛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배가 고팠는데 정류장 바로 옆에 고기 굽는 냄새가 솔솔 나는 음식점이 있어 홀린 듯 들어갔더랬다. 가격도 시내에 비해 엄청 저렴하여 별 기대를 안 했는데 놀랍게도 이 음식이 브라질에서 먹은 중에 최고였다.
높이 솟은 바위산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파벨라의 집들은 멀리서 보면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가까이서 볼 때에도 이와 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감히 그분들의 가난에 '아름다움'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되나 망설임도 있었다. 혹여 괜히 갔다가 해코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다녀와 보니 파벨라는 코앞에서 바라본 모습도 멀리서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똑같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잘 웃었고, 각자의 삶에 충실했다. 다른 점은 오직 '파벨라'라고 정의가 내려진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파벨라를 가이드 없이 방문하는 걸 절대 추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이날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건 운이 좋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리우에는로시나 파벨라 말고도 언제 총성이 울려도 이상하지 않은, 정말로 위험한 파벨라가 많다. 우린 그런 곳에는 가지 않았다.
짐작컨대 남편이 브라질 현지인들과 외모가 거의 비슷하여 그 덕에 내 신변도 좀 더 보호받지 않았나 싶다. 로시나 파벨라를 걸을 때에도 아마 가이드 한 명과 뒤따르는 아시안 여행객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지나치게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도 표적이 될 수 있기에 언제나 당당하고 씩씩하게 다니되, 무모한 모험은 자제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