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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n 19. 2022

'악쇼' 등산일기2- Never say no

모로코 여행기 #25

<지난 이야기>

'신의 다리'를 마음껏 감상한 후 돌아가는 길.

아직 오후 2시도 안되었고 이대로 하산하기는 아쉽다.

결국 악쇼의 또 다른 명소인 폭포까지 보러가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다.

인생 최초 금식 중 등산하기 도전!




폭포로 가는 길의 시작점에서 외국 여행객들을 만났다. 어머니와 두 명의 딸이었다. 옆에는 현지 가이드로 보이는 한 남자분도 같이 있었다. 그 분들은 갈림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붑커>> 어디로 가세요?

어머님>> 폭포로 가는 방향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이쪽이 맞나요?

붑커>> 네, 맞아요. 저희도 그쪽으로 가요. 따라오세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나와 붑커는 옆에 서 계시던 현지 가이드 아저씨와 같이 걷고, 어머니와 두 딸은 몇 걸음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다. 붑커는 가이드 아저씨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붑커>> 이 분이 폭포까지 가이드를 해주시려고 했는데 저 분들이 가이드를 못 믿고 안 따라왔나봐.  

>> 아하..

난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여자끼리만 여행할 때는 더더욱 매순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조금만 방심했다가 무슨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고 또 의심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5년 전 혼자 유럽여행을 하던 때, 사람들이 베푸는 호의를 마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시 어느 정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해야만 했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행히 좋은 사람들만 만났고 아무런 해코지도 당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니면 우리 엄마 말씀대로 '내 몰골이 돈을 오히려 쥐어줘야 할 것처럼 생겨서 아무도 안건든 것'이었을지도. 행내내 날근날근한 치마에 때 탄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녔으니..


아무튼 동질감이 느껴졌던 나는 안심하시라는 의미로 뒤를 돌아 어머니와 딸들을 향해 미소를 날려주었고 그분들도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만약에 내가 없이 붑커 혼자서 그분들에게 따라오시라고 했더라면 아마 그분들은 붑커도 믿기가 어려웠을거다. 긴.. 저렇게 머리에 꽃달고 가이드 해주겠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아냐?'하고 오해할만도 하겠다.

꽃을 '단' 남자.

좀 전에 신의 다리에서 돌아오면서 우리 둘 다 길가에 있던 꽃을 머리에 하나씩 꽂았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달고 있는 붑커가 너무 웃겨서 혼자 킥킥댔다. 저러고 처음 보는 분들한테 어디가시냐고 물어본야? 진짜 못말려. 앗 그러고보니 내 머리에도 아직 꽃이..




나>> 근데 폭포까지 얼마나 걸려?

나도 참 웃기다. 보통 이런 질문은 시작하기 전에 하지 않니..? 

붑커>> 한 시간도 안걸려!

나>> 으흠. 오케이!


그렇다. 사실 처음부터 폭포코스가 왕복 3시간 이상 걸린다는 걸 알고 간 것은 아니었다. '한 1시간 반 정도면 되겠네!'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등산이었던 것이다. (오래 걸릴 걸 애초에 알았으면 아마 도전하지 않았을거다.)

여전히 날은 푹푹 찌고 땀도 삐질삐질 났지만 오래지 않아 폭포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 나아갔다. 


 

곧 죽어도 사진은 찍어야지.


중간에 작은 폭포에서 잠시 쉬어가기.


잠시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는 중.

나>> 붑커, 이제 거의 다 온거야?

붑커>> 이제 한..30분 더 가면 될 거 같아.

나>> 뭣?!우리 벌써 40분은 온 것 같은데?

붑커>> 내 기억에 여기서부터 삼사십분은 더 갔던 것 같아.

나>> 아까는 한시간도 안걸린다며 (이 X끼야)...?!

붑커>> 여기 왔던 게 벌써 8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해.

저걸 믿은 내가 잘못이다.




나>> 헥헥..

붑커>> 헥헥..

목이 바짝바짝 탄다. 30분을 더 걸었지만 아직도 폭포는 나올 생각을 않는다. 뒤에서 따라오시던 모녀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보겠다며 한참 전에 작별 인사를 했다.

초반에 흥얼거리던 콧노래는 쏙 들어가고 우리 둘 다 점점 말이 없어졌다. 당장 물 한방울이 간절했다. 나마 중간중간에 흐르는 계곡물을 받아 둔 쉼터들이 있어서 찬물로 얼굴을 적실 수는 있었다. 수를 하면서 '아 그냥 이거라도 마실까'하고 몇번이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나>> 붑커 괜찮아..?

붑커>> 응 괜찮아..! 너는?(안 괜찮아 보임.)

나>> 나 힘들어 죽겠어 하하하..

붑커>> 사실 나도 하하.. 

붑커가 힘들다고 하다니. 이거 정말 힘든건데.

심지어 붑커는 "계속 가고 싶어?"라고 묻기까지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붑커>> 너 괜찮아? 정말 계속 가고 싶어?

붑커가 세 번째 물었고, 난 세 번째 똑같이 대답했다.

나>> 헥헥.. 응! 가고싶어.

붑커>> Fxxx, why you never say no?Hahahahaha.

언제나 예스맨인 나 때문에 우리는 등산을 강행했다.  



입술에 바를 침마저 말라갈 즈음 은 공터가 나왔.

붑커>> 나 여기 기억해. 이제부터 진짜 15분 정도만 더 가면 돼.

나>> 좋아..! 가보자.

공터는 온통 풀밭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수많은 메뚜기들이 그 안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으악. 평소 같으면 메뚜기들과 같이 폴짝폴짝 뛰면서 '으악으악 벌레!'를 외쳤을테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다. 다리 위로 메뚜기가 뛰어 오르든 말든 앞만 보고 갈 뿐이었다. 곧 폭포가 나온다. 조금만 더 힘내자..!


그리고 드디어.

"다 왔다!!!!"

반갑다 폭포!


물이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듯,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신비롭다.


폭포도 흐르고 바위도 흐르고.


나>> 아~ 너무 좋다.

붑커>> 아~ 나도 너무 좋다. 근데 원래 폭포에 물이 훨씬 많았는데, 올해는 가뭄이 워낙 심해서인지 물이 거의 안 내려오네.

올해 유독 비가 내리지 않아서 모로코 전역이 가뭄이었다. 그 영향인지 폭포도 기세가 약해져 있었지만, 더위와 금식으로 바싹 마른 우리의 지친 몸 달래주기에는 충분했다. 시원한 폭포 옆의 그늘에 누워서 조금 쉬고 나니 재충전이 되었다.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여전히 목은 말랐지만, 내리막이기도 하고 곧 이프타르(breakfast)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렇게 산을 내려왔을 땐 벌써 해가 산 아래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 5시 경, 등산 종료.

휴식 포함하여 총 등산 시간 6시간 가량.

그 날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 아단이 울리자마자 나는 1리터짜리 물 절반을 벌컥벌컥 원샷했다. 태어나서 마신 물 중에 가장 달았다.


[오늘의 결론]

금식과 동시에 등산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그치만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얻은 것]

1. 취감과 자신감: 하루만에 신의 다리와 폭포를 모두 가보다니 정말 뿌듯하다. 그것도 물 한모금 안 마시고. 난 이제 어느 산이든 다 갈 수 있지 않을까?

2. 툽칼산 등산권: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툽칼산'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걸어야 한다. 붑커는 내가 툽칼산을 잘 오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이번 악쇼 등산을 통해 오르고도 남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툽칼산의 눈이 녹으면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리하여 나는 붑커와 함께 툽칼산을 오를 수 있는 등산권을 획득했다!

3. 영광의 상처: 산 중 넘어져서 무르팍과 오른손바닥에 상처가 났다. 악쇼에 온 기념으로 몸에 흔적을 남겼다.

 

 


<번외>

폭포 가는길,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넘어지기까지 한 나.

나>> 악!!!

붑커>> 괜찮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내리막에서 땅을 잘못디뎌 휘청이다가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다리가 삐진 않았는데 오른손바닥의 피부가 꽤 커다랗게 까진 게 보였다. 윽 기어코 피를 보는구나. 그래도 빠르게 새살이 돋아서 나중에 엘자디다 어머니 댁에 갔을 때 즈음엔 흉터만 남아있었다. 어머니께 자랑스레 영광의 상처를 보여드렸더니 '셰프샤우엔에서 까시(도장)를 찍어왔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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