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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Mar 18. 2023

수영을 하게 된 이유

동남아 여행 중 바다에서 수많은 액티비티를 즐겼다. 특히 스노클링을 하며 보았던 영롱한 바닷 잊을 수 없다. 단 한 가지 아쉬웠던 건 내가 수영을 못한다는 이었다. 편은 바다 깊은 곳까지 자유롭게 헤엄쳐 들어가 동영상도 찍는데 나는 구명조끼를 입고 수면 가까이에만 떠다녔던 게 못내 아쉽다. 왜 그동안 엄마말 안듣고 물이 무섭다는 핑계로 수영을 안 배웠던가. 한국에 돌아가면 내 이 악물고 수영을 배우리라.

구명조끼를 벗기엔 수영을 못해 무섭고 사진은 찍고 싶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구명조끼를 용감하게 벗지 않는 이상 예쁜 사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게 귀국 후 우리는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는 같이 강습을 받고 싶었지편과 퇴근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 우선 우리끼리 자유롭게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이미 수영을 할 줄 아는 남편은 잘 하시는 분들이 있는 레인으로, 나는 얕은풀에서 발차기부터 연습했다. 처음엔 킥판잡고 발차기도 어려웠다. 25m 레인을 발차기로 한번에 가는게 이렇게 힘들다니. 옆 사람은 발에 모터를 단 것처럼 시원하게 쭉쭉 앞으로 나가는데. 나는 아무리 첨벙대도 물만 튀기 숨만 차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무엇이 문제인지부터 알아야겠어. 난 틈 나는대로 수영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출근 전에도, 점심 시간에도, 자기 전에도, 일하다 틈틈이. 마치 수영에 중독된 사람처럼 동료와 대화중에도 뜬금없이 수영 이야기를 꺼냈다. 주말에는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 넘게 발만 찼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발을 뻥뻥 차기도 했다. 가끔은 꿈에서도 찼다. 그렇게 영상에서 본대로 꼬박 두 달을 발차기만 연습한 결과.

마침내 발차기가 더 이상 힘들지 않았다.


야호!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퍽 오래 걸렸지만 뿌듯. 하나를 이뤄내니 자신감도 붙고 재미도 더해. 내친김에 킥판도 떼고 팔 돌리기도 연습해 보았다. 발차기에 비하면 팔동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아직 물이 무서운 수린이(수영 어린이의 줄임말)'에서 이제 '자유형 좀 할 줄 아는 수린이' 한계단 올라섰다.


요즘은 수영하러 가는 날만 기다려진다. 동남아에서 바다수영 좀 맘껏 해보고 싶다는 사소한 욕심으로 시작한 수영이었는데 어느새 내 일상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됐다. 이 다음 스노클링을 하러 갔을 때는 나도 상어랑 같이 수영해야지.


수영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수영이 더욱 좋아지게 만드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1. 허리가 아프다.

고질병으로 요통을 달고 사는 나는 조금만 앉아 있어도 리가 아프고 엉덩이와 다리까지 저려온다. 근데 수영을 한 날에는 통증이 싹 사라진다. 일을 하면 또 다시 아프긴 하지만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걸 느낀다. 수영은 물에 떠서 하는 운동이라 척추 디스크에 가해지는 압박을 줄여주고 코어 근육을 단단하게 길러 척추를 잡아주기 때문에 허리 건강에 좋다. 엊그제 수영장에서 만나뵌 한 어머님께서는 허리 수술만 번이나 하셨다며 건강을 위해 수영을 다닌다고 하셨다. 나도 요즘 수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2. 남편 자랑

남편은 수영장 인기남이다. 나 혼자 가면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남편과 같이 가면 하루에도 몇 번씩, 주로 우리 부모님과 비슷한 연세의 어머님들께 주목을 받는다. 자주 받는 질문 레퍼토리가 있다.

- 어머~ 남자친구인가봐!

- 앗, 남편? 진짜? 너무 어려보이는데.

- 뭐? 서른? 에이~ 거짓말!

- 어느나라에서 왔어요? 

- 모로코? 와~ 멀리서 왔네. 어떻게 만났어요?

- 어머어머 행하다 만났구나~ 맞아 요즘 젊은 사람들 국제결혼 많이들 하더라. 아유 멋있다~

- 결혼식은 했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가?

- 일자리는 구했고? 아~ 얼마전에 취직했어? 아유 잘했다 잘했어. 착실허게 생겨갖고 잘 살겠어. 복도 많어 아유.

조금은 사적일 수 있는 질문도 있지만 아들딸 안부 묻듯이 이것저것 챙겨 물어봐주시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기분이 좋다. 그리고 마무리는 항상 붑커 칭찬이다. "착하게 생겼다.", "이쁘네 이뻐(내가 듣고 싶은 말인데..)", "한국말도 잘하네~(감사합니다만 한 것 같은데..)", "남편이 수영을 엄청 잘하네. 오래 배웟나봐~" 등등. 한 분은 귀엽다는 말씀만 열 번도 넘게 하셨는데, 그러고도 너무 귀여워 못참으시겠던지 아기 엉덩이 토닥이듯 남편을 찰싹찰싹 때리시기도 한다.

내 칭찬도 아닌데 목에 힘이 들어간다. 소심한 관종인 나는 이런 상황을 은근 즐기는 중이다.


3. 귀여운 친구를 사귀었다.

수영장에서 만난 9살 꼬마가 어느 날 나에게 물었다.

"근데.. 한국 사람이에요?"

푸흡. 웃음을 꾹 참았다.

"응! 나 한국사람이야."

"어 근데 처음에 한국사람 아닌 줄 알았어요."

엥. 외국인 남편이랑 같이 있어서 그랬나?

"아냐 나 토종 한국인이야. 외국인 같아?"

"어 그래요? 얼굴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이 뭔가 어눌한 것 같아서.."

푸흡. 그냥 모로코 사람이라고 할걸. 한국말이 서툰 한국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날 몇 분만에 우리는 꽤 친해졌다. 이 친구는 궁금한게 정말 많아서 짧은 시간 안에 나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얻어갔는데, 그 중에는 나와 남편이 가끔 부부싸움을 한다는 사실도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게 참 어렵다.. 다음에 또 만나면 그렇게 자주 싸우진 않는다고 꼭 다시 말해줘야지.


아무튼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생기는 것도 수영을 다니는 것의 장점이다. 그럼 오늘도 수영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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