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생님, 오늘도 일이 많네요.”
퇴근시간을 훌쩍 넘겨 어두워진 시간, 교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는 진희의 교실 문을 열고 야간에 학교를 지키시는 김주사님이 인사를 건넨다.
“아! 주사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학교 문도 못 잠그시고… 곧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진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김 주사님께 인사를 꾸벅한다.
“괜찮습니다. 학교 문에 멧돼지가 헤딩을 해가지고 마 고장이 나서 잠그지도 못합니다. 천천히 하이소.”
“네? 진짜요? 언제 그랬습니까?”
“농담입니다. 이선생님. 허허허.”
김주사님은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으신다.
“와! 진짠 줄 알았네요.”
진희는 책상 서랍을 열어 간식 몇 개를 꺼내 김 주사님의 잠바 주머니에 넣어 드린다.
“아이고! 매번! 허허.. 잘 먹겠습니다.”
”이 선생님, 여기 이거.. 좀 받아 보이소.“
김주사님은 반대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진희에게 건네주신다.
“어? 주사님, 이게 뭡니까?”
진희는 푸른색 자개 단추같은 버튼이 달린 작고 묵직한 큐브 같은 것을 하나 받아 들고 여쭙는다.
“이선생님,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까?“
“네? 돌아가고 싶은 과거요?
“누구의 언제가 보고싶은지 생각하면서 이 버튼만 누르면 그 때, 그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무슨… 주사님, 정말요? 와! 완전 타임머신이네요! 후우! 진짜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한 번 누르면 과거로, 두 번 누르면 원래 있던 곳으로 갑니데이. 지난 주에 이거 갖고 임진왜란에 가가 이순신 장군 만나고 왔다 아인교.”
“와아! 어제 문 고장 낸 멧돼지 잡으러 가야겠네요.“
교실 TV의 리모컨 기능을 설명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한 주사님의 말씀에 농담으로 받아치는 진희.
“이선생님, 저는 먼저 내려갑니데이. 천천히 일 보시다 들어가이소.”
“네, 주사님. 고맙습니다. 고생하십시오.”
김주사님은 꾸벅 인사하는 진희를 향해 몸을 돌려 손가락 세 개를 펴고 한 마디 덧붙인다.
“세 번 누르면 그 인생에 다시 뛰어들 수 있습니데이.”
“아!.. 예.. 하하. 저도 임진왜란에 가서 이순신 장군 만나고 와야겠네요. 들어가세요.”
김주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실로 들어온 진희의 손에는 제법 정교하게 만들어진 큐브가 들려있다.
진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즈막히 읊조린다.
“흠… 임진왜란, 한산도 대첩.”
그리고 푸른 빛을 내는 자개 버튼을 꾹 누른다.
“딸깍!”
경쾌한 누름쇠 소리.
“딸깍! 딸깍! 딸깍!”
“아…! 김주사님.. 참.. 나.“
피식 웃으며 큐브를 주머니에 넣는 진희.
“진희야! 빨리 하고 집에 가자.”
진희는 책상에 앉아 내일 할 사회 수업 준비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