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법을 잊은 우리들에게

다시 숨 쉬는 법, 프라나야마

by 파드마

[무호흡, 그 아찔한 추억]

출퇴근 시간, 지옥철.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열차 안에서
어느 순간 눈앞이 아득해지고,
숨을 쉬어도 쉬어도 가슴속에 공기가 차지 않는 것 같았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그냥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마저 들었던 그 순간…



결국, 목적지가 아닌 아무 역에서 내려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다가
겨우 숨을 돌리고 다시 열차에 올랐던 적이 있어요.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코로나 백신을 맞던 날,
병원 대기실에서 30분을 기다리던 중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그 당시엔 백신 후유증을 관찰하느라
접종 직후 일정 시간 병원에 머물러
의료진이 경과를 지켜보는 절차가 있었거든요.

‘혹시 나도 부작용이 오는 걸까.’
긴장한 채 앉아 있었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몸 전체를 울려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은 그 순간—

눈앞이 흐릿해졌어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진료실에 계시던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제 코와 입을 막고 있던 마스크를 벗기며 하셨던 말은, 아직도 또렷해요.

“숨 크게 쉬세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입 안과 코 속으로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한순간에 밀려들어왔어요.

정말, 그 순간 저는 숨을 멈추고 있었던 거예요.

그날 이후, 저는 그 병원에서 요주의 인물이 되었어요.
접수만 하면 “꼭 앉아서 쉬다 가세요.”라는 안내를 받아요.

그런데 그 병원이… 소아과거든요.
어른인 저는, 지금도 혼자 늘 그 다정한 당부를 듣는 사람이에요.
따뜻하게 들리긴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좀 민망해요.




[매트 위의 카운트다운]

저는 정신이나 몸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이를 악물고 숨을 참는 버릇이 있나 봐요.

그건 매트 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힘든 자세에선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춰요.

그리고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세며 그저 버티는 거예요.

그렇게 나 혼자만의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아, 드디어 해방이다.”

그런 얼굴로 자세를 풀어버리곤 했는데—



선생님은 그런 저를 가만히 보고 계셔요.
(꼭 그런 순간에는 눈이 마주쳐요, 진짜로.)

“너 뭐 한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그런 눈빛.

선생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세요.

“버티지 말고, 그 안에서 숨 쉬어봐.”
“힘든 걸 피하지 말고, 그 안에서 머물며 공간을 좀 만들어봐.”

불편한 감정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들을 하나하나 모아 편안함에 이르러 보라는 것.

그건 단순히 숨을 쉬라는 말이 아니라,
그 감정 안에서 도망치지 말라는 말이에요.

무섭고 두려운 감정 속에서
한 호흡, 한 호흡씩 모으다 보면
그 감정에 머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생겨요.

그리고 그 용기는,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주는 '숨'이 돼요.

숨을 멈추는 건,
지금 여기를 떠나고 싶은 마음.

숨을 다시 들이쉰다는 건,
‘여기에 남아보겠다’는 의지예요.




[내 숨이 먼저 말해주는 것]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순간에 몰리면
"숨이 막힌다." 혹은 "숨 쉴 틈도 없다."라고 말해요.

하지만 정말로 숨이 막힌 게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건, 과학으로도 증명되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숨이 얕고 빠르게 바뀌고,
깊은 호흡은 더 어려워져요.

반대로, 숨을 천천히 깊게 고르면
몸의 긴장은 풀리고, 마음도 이완되죠.

호흡은 심장 박동과 연결되어 있고,
숨의 리듬은 자율신경계와 직결되어 있어요.

몸과 마음의 균형은
이제는 제 손목 위 작은 기계에서도 보여요.
바로, 스트레스 수치로도요.




[생명력을 깨우는 프라나야마]

요기들은,
과학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그걸 알고 있었어요.

산스크리트어 ‘프라나야마’는
생명력과 기운을 의미하는 ‘프라나’,
확장과 조절을 의미하는 ‘아야마’의 합성어예요.

숨을 통해 내 안의 생명력을 일깨우고,
그 생명력으로 일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바로 프라나야마예요.



몸은 알고 있고,
숨은 기억하고 있고,
기계는 이제야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숨을 다시 들이쉬는 기술]

저는 요즘, 숨이 흔들릴 때
자주 떠오르는 두 가지 호흡 연습이 있어요.
꽤 효과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었달까요.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하나, 둘, 셋, 넷.
천천히 내쉬어요.

머릿속에 내 폐가 부풀었다가
조용히 가라앉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고요하게 내 호흡 소리를 느껴보는 것.
그 리듬 속에서 마음의 중심이 돌아와요.

요가에는 이 호흡을 '사마 브리띠'라고 불러요.

그리고 코를 번갈아가며 아주 느리게 숨을 쉬는 방법도 있어요.
오른쪽 코로 들이쉬고, 왼쪽 코로 내쉬고—
다시 왼쪽으로 들이쉬고, 오른쪽으로 내쉬고.
숨이 좌우로 흐르다 보면 생각도 감정도 조금씩 풀려요.

이건 ‘나디 쇼다나’라는 정화 호흡이에요.
왼쪽과 오른쪽,
감성과 이성,
달과 태양 사이의 흐름을 다시 맞춰주는 숨.



우리는 그렇게 작은 숨 하나로도,
그날의 감정을 다시 살아볼 수 있어요.
마치, 그냥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요.




다음 편 – 정말 손끝만으로, 마음이 움직일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손을 잠시 움직여볼까요?
엄지와 검지를 모으면 사랑이 되고,
중지를 세우면 분노가 되고,
주먹을 말아쥐면, 꾹 참고 있던 감정이 떠오르죠.
그저 손가락 몇 개를 움직인 것뿐인데,
그 끝엔 아주 다른 마음이 담겨 있어요.

다음 편에서는,
그 작은 손짓 하나가
내 마음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무드라’라는 이름으로 살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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