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좀 그만 봐!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감각은 시작된다

by 파드마

[부장과 사장과 나]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 저는 무슨 자세인지 몰라서 옆 사람을 힐끗힐끗 쳐다보곤 했어요.
“다른 사람 보지 말고, 자신의 동작에 집중하세요.”
진심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눈을 감고 싶었지만 말이죠...
솔직히, 그땐 옆을 안 볼 수가 없었어요!

초보 요기니에게 산스크리트어는 그야말로 외계어 그 자체예요.

옆과 앞의 사람을 보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을 지경이었단 말이에요.

부장가아사나

오죽하면, 부장가아사나는
‘부장과 사장과 나’처럼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요?

그런데 요가를 안내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선생님의 그 말씀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타인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어요.
요가에서 완벽한 자세란 없어요.
개인의 신체 구조에 따라, 혹은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같은 아사나라도 접근 방식이 달라지거든요.

아무것도 모른 채 타인을 따라 하다 보면,
잘못된 정렬로 이어지고, 때로는 부상까지 입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몰라서 쳐다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게 결론이에요.

오히려 ‘저 사람 새 요가복 샀네’, ‘어디 거지’,
‘신상인가?’, '아직 팔까?' 같은 산만한 생각들만 늘어갔고,
남은 것은 저만의 생생한 감각 따위는커녕.

서랍장이 터질 만큼 쌓여 있는

남들 따라 산 형형색색 요가복들…

그때의 저는 요가가 아니라
요가인의 외형(옷, 몸매, 고요해 보이는 그 분위기)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눈을 감아야, 떠지는 눈]


그러나 어느 날, 시선이 주는 감각에 너무 지쳐서
그냥, 눈을 감고 내 몸의 소리에만 가만히 귀 기울여보았어요.

그러니 그제야 내 몸이 오직 나에게만 들리는,

나만이 느껴지는 방식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움직임은 아주 작았지만,
하나의 감각으로 내 몸이 보이기 시작한,
그 ‘순간’이었어요.

눈을 감았더니,
비로소 감각이라는 또 다른 내면의 눈이
슬며시 떠진 것이에요.

그리고 매트 위에서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자세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습관은
매트 밖으로도 이어지기 시작했어요.

예전의 나는 타인의 시선을,
그리고 그들의 말과 표정을 지나치게 의식했었어요.
그래서 타인의 평가가 곧 저 자신이 되었고,
그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쉽게 상처받았어요.

그리고 저녁마다, 이불을 덮고 반복하던 말.
‘나는 왜 이러지?’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그런 자기반성의 시간에 빠질 수밖에 없었어요.

매트 위에서 남을 따라 하던 제가,
매트 밖에서도 남의 말, 남의 기준,
남의 삶을 좇고 있었던 거예요.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시작되는 감각]


시선은 인간 감각의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요.
그만큼 시선은 감각의 입구이자,
의식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의미해요.

드리시티(Drishti)
요가에서 시선을 어디에 머무르게 할지를 뜻하는 단어로,
‘트라타카(Trataka)’라는 눈 정화법 또한 존재해요.

트라타카는 사실 눈을 정화하는 기술이지만
그 본질은 의식을 맑게 하고,
내가 바라보는 삶의 방향을 되돌아보는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 옛날 요기들도,
시선이 감각의 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이것은 단순히 내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의 응시에 그치지 않아요.
의식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를 선택하는,
감각의 방향 훈련이기도 해요.

우리 모두 잠시만 눈을 감아볼까요?
그리고, 바깥으로 향하던 나의 시선을
천천히 안으로 돌려봐요.

아무도 보지 않는 그 눈으로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
내 몸 어딘가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가
스스로를 비추기 시작할 거예요.



다음 편 – 숨 쉬는 법을 잊은 우리들에게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순간에 몰리면
“숨이 막힌다”, “숨 쉴 틈도 없다”라고 말해요.

하지만 정말로 숨이 막힌 게 아니라,
마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숨을 참는 버릇, 버티는 호흡,
그리고 그 안에 머물기 위한 작은 용기.

다음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프라나야마’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가까이 꺼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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