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나를 의심했다

흐름을 막는 마음의 매듭, 그란티

by 파드마

[흐름을 가로막는 매듭의 이름, 그란티]


요가를 하다 보면,

어떤 날엔 감각이 막히고,

어떤 날엔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아무 일도 없는데,

내 안의 흐름이 막혀버린 듯한 그 순간.

요가의 전통에서는 이런 내면의 응어리를 ‘그란티(Granthi)’라고 불러요.


차크라를 따라 에너지가 오르려 할 때,

그 길목마다 마주치는 조용한 저항.


이 매듭에는 이름도 있어요.


브라흐마, 비슈누, 루드라.


1. 브라흐마 그란티 (Brahma Granthi)

척추 하단, 물라다라 차크라 근처에 있어요.

변화나 성장을 두려워하고, ‘지금 이대로가 안전해’라는 마음에 머물게 되는 매듭이에요.


2. 비슈누 그란티 (Vishnu Granthi)

아나하타 차크라, 가슴 중심에 있어요.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매듭이에요.


3. 루드라 그란티 (Rudra Granthi)

아즈나 차크라, 제3의 눈 부근에 있어요.

영적으로 깨어나고 싶다는 갈망, 하지만 그걸 내가 통제하고 싶어 하는 에고의 저항에서 생겨요.


이렇게 보면 어려운 이론 같지만,

사실 그란티는 옛 개념이 아니에요.


단지 몸이라는 지도의 차크라 경로에 놓여 있는 에너지 장애물이 아닐 뿐,

오늘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도 이 매듭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요.


불안, 자책, 조건, 기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쉴 새 없이 만들어내고 있는,

흐름에 대한 조용한 저항들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에요.


‘난 아직 아니야’

‘이걸 느껴야 해’

‘이 정도는 돼야지’


그것은 이렇게,

마음속에 고요히 숨어서 속삭이고 있어요.


그건,

내 마음이 만든 매듭이에요.

내가 만든 조건들이고,

조용히 흐르고 있던 감각을

끊고, 막고, 판단해 버리는 마음의 고리예요.




[믿음의 순간, 조용한 움직임]


저 또한 며칠 전,

그런 매듭이 다시 조용히 조여 오는 순간을 마주했어요.


깊은 후굴 동작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분명히 몸은 충분히 열려 있었어요.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만 더 나아가면 허리가 부서질 것 같다는 두려움의 감정이 생겼어요.


마치 거북이가

등딱지 안으로 몸을 순간적으로 집어넣듯,

바로 멈춰버렸어요.


불안은 순식간에

제 몸을 딱딱하게 만들고,

이전의 상태로 회귀시켰어요.


그때,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등을 토닥이며 말했어요.


“어쩌면… 내 몸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마음으로, 내 몸을 한 번 믿어봐요.”


그 말이 낯설면서도 따뜻하게 마음에 들어왔어요.

그 안에는 강요도, 조건도 없었어요.

그저 저를 믿으라는,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조용한 안내였죠.


그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었고,

제 몸을 한 번 더 믿어보았어요.


그리고…

정말 움직였어요.


거짓말처럼,

아주 천천히 다시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느꼈어요.

그란티를 푼다는 건,

무언가 거창한 체험이 아니라

그 순간, 나를 한 번 더 믿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매트 밖의 그란티]


사실, 이 매듭은

매트 위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더 자주,

매트 밖에서 고개를 들어요.


우리의 일상,

관계, 말투, 시선 속에서

더욱 조용하게 움츠려 있다가,

계속해서 고개를 들어요.


“내가 감히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돼.”

“나만 이런가?”

“괜히 시작했나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자기 자신을 움츠리게 만드는 말과 마음을 마주해요.


거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의 자기부정이

내 안의 매듭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도 해요.




[‘되어야만 하는 나’라는 또 다른 매듭]


그란티는 꼭 ‘안 되는 나’에게만 생기는 게 아니에요.

‘되어야만 하는 나’라는 마음 안에도 조용히 숨어 있어요.


매트 위에서는,

차크라가 반드시 느껴져야 하고,

프라나는 더 강해져야 하고,

쿤달리니는 각성돼야만 한다는 기대들.


조금 더 어려운 아사나를 해야만 하고,

그래야만 내가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매트 밖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딸이어야 하고,

좋은 아내여야 하고,

친구로서도 괜찮아 보여야 해요.


이 나이쯤이면 이 정도는 해놔야 한다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따라야 할 것 같은 관념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되어야만 하는 나’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쉴 새 없이 작고 큰 매듭이 엮어지고,

단단하게 엉겨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내가 제 자신에게 걸어둔 또 다른 조건이었어요.


느끼려 들고,

증명하려 들고,

변화를 자꾸 쥐어짜 내려 했던 그 마음들이요.




[그러나 흐름은 존재한다]


우리는 각성을 기다려요.

기적 같은 순간,

모든 게 풀리는 날.


하지만 그란티는

그렇게 풀리는 게 아니에요.


그건,

숨을 한 번 더 쉬어보는 일.

내 몸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일.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믿어보는 일.


다시 숨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감각이 또렷해지는 순간.


그 아주 작은 신호가

나를 지금, 여기로 이끌어요.


지금 여기에는

무언가를 성취해야 한다는 조건도,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기준도 없어요.


오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이 있어요.

그리고 그 존재는요,

언제나 흐르고 있었어요.

믿지 못했던 그 마음이,

매듭이었을 뿐이에요.




다음 편 – 기울어진 몸 안에서 중심을 상상하다


마음속 매듭을 하나 풀어내고 나니,

이번엔 몸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더 편한 쪽, 더 쓰는 쪽,

눈치채지 못했던 기울어짐이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죠.


다음 글에서는 ‘나디’라는 개념을 통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다시 그려보려 해요.

완벽히 곧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흔들리는 중에도 중심을 상상해 보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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