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크라와 쿤달리니, 에너지는 구조가 아니라 감각이다
[싱잉볼 소리에서 시작된 질문]
요즘 저는 싱잉볼 소리에 깊이 빠져 있어요.
싱잉볼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소리의 떨림은,
고요한 마음의 수면 위에 스며들어 작은 돌 하나가 그리듯 부드러운 파동을 일으켜요.
그 떨림을 따라가다 보니,
요가 수련 중 만났던 '차크라'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요가 TTC를 할 때 차크라에 대해 배웠지만, 그때는 조금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어요.
어딘가 존재하는 듯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너머의 것'처럼 느껴졌달까요.
마치 '신성의 영역'처럼요.
그런데 싱잉볼 소리를 통해 몸과 마음으로 직접 진동을 느끼게 되니, '차크라'라는 개념이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다가왔어요.
이번에는 '느껴지는 흐름'으로요.
그래서 저는,
차크라와 쿤달리니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해요.
지식이 아니라, 제가 느낀 살아 있는 감각으로 말이에요.
[차크라와 쿤달리니, 흐름일까 구조일까]
요가를 수련하다 보면 '차크라'와 '쿤달리니'라는 단어를 종종 접하게 돼요.
차크라는 흔히 뿌리, 성, 태양신경총, 가슴, 목, 제3의 눈, 크라운처럼 7개로 구분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각 차크라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면 위의 표와 같아요.
저는 처음에는 그것이 특별한 에너지 센터라고 생각해서, '열리고 닫히는 것' 같은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이해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차크라는 거대한 하나의 흐름이다]
차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흐름을,
우리가 몸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배치해 놓은 '지도' 같은 것 아닐까요?
추상적인 개념을 신체에 대입해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그려낸 구조인 거죠.
차크라가 흐른다는 것은,
특정한 감정이나 에너지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삶을 살아가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쿤달리니, 생명력의 흐름]
이렇게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쿤달리니(Kundalini)'라는 개념과도 만나게
돼요.
'쿤달리니의 깨어남'이라고 하면,
때로는 거대한 신비 체험처럼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조금 달라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생명력의 활성화"
이것이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쿤달리니예요.
[소리와 에너지, 그리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들]
싱잉볼 음계와 차크라의 연결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특정한 음계가 차크라와 연결된다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주파수 자체가 인간의 심리와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 과학은 이제야 특정 주파수가 자율신경계나 뇌파,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사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흐름을 몸과 마음으로, 감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싱잉볼이나 차임벨 같은 울림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존재를 진동시키고, 감정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경험들은 제게 이렇게 속삭였어요.
"차크라와 소리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흐름이다."
[요가를 넘어, 몸과 마음의 자유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흐름을 깨우는 것도 참 소중하지만,
사실 꼭 요가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수영을 할 때, 춤을 출 때, 산책을 할 때,
몸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자유로움을 느끼는 모든 순간들.
그 흐름은 결국 마음의 자유로움으로 이어져요.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자연스럽게 흐르는 경험' 그 자체라는 걸 말이에요.
[깊은 통찰 없이도 괜찮아요]
마지막으로, 요가 수련을 하면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하나.
'깊은 통찰 없이도 괜찮다.
단순히 육체적 수련을 해도, 몸이 자유로워지면 생각 또한 자연스럽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이끌어주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되어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