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라, 나를 살게 한 손끝의 기억
<손끝으로 드러나는 마음>
엄지와 검지를 살짝 겹치면, 작은 하트가 돼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마음이 손끝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같은 손으로 중지만 들어 올리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돼요.
어디선 무심한 장난일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곳에선 싸움이 시작되기도 해요.
말없이 둥글게 말아 쥔 주먹 안에는,
삼켜둔 있는 감정들이 숨어 있어요.
눈물, 분노. 꾹 눌러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말들.
그 버티고 있는 마음들이 주먹 안에 꾸깃꾸깃 들어 있어요.
그러다 문득 그 주먹을 살며시 펴는 순간—
숨겨둔 감정이 비로소 흘러나오기도 하죠.
엄지손가락을 하늘로 올리는 ‘따봉’ 같은 손짓은,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작지만 단단한 긍정이에요.
“너는 괜찮아.”
“잘하고 있어.”
“최고야.”
때로 이 짧고 단순한 손짓이,
가장 말없는 위로가 되기도 해요.
그저 손가락 몇 개가 만든 모양일 뿐인데,
그 끝엔 전혀 다른 마음이 담겨요.
이게 무드라예요.
말없이,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방식.
몸이 대신 보여주는 내 마음의 표지판.
감정은 손끝을 타고 나가기도 하고,
손끝에서부터 스며들어 오기도 해요.
물기를 머금은 듯, 조용히 안으로 번져오는 감각으로요.
<멈췄던 그날, 움직임 없는 기억들>
'갑상선암'입니다.
크기나 모양에 따라 지켜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환자분은, 빠른 수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진단서를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의사 선생님은 정말 상냥하셨어요.
혹시라도 제가 놀랄까 봐, 아주 조용히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원의 모든 소리가 꺼져버렸어요.
제 시간은 그대로 정지돼 버렸어요.
앞으로의 계획, 해야 할 일들,
그리고 내가 마주해야 할 것들이
그 한마디에 아주 멀리 밀려나 버렸고-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이제 그럼 뭘 해야 하지?"
라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어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제 일상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버려
하나의 고장 난 시계가 되어버렸어요.
물론,
누군가에겐 ‘크지 않은 병’ 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날의 저는, 삶이 통째로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다들 내일도 평소처럼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저는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야 할 것들이 한가득이었거든요.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모든 일정을 미루고 병원으로 향했어요.
오늘은 피검사, 내일은 초음파 검사.
그렇게 병원 일정은 몰아쳤고,
겨우 수술 날짜를 잡았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어요.
모든 검사를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고 나니,
이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순간이 밀려왔어요.
며칠째 방 안에서만 버텼어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싫었고,
밥을 챙겨 먹는 일조차 귀찮았어요.
그리고, 감정의 후폭풍이 찾아왔어요.
정말이지...
술도 안 마셨고,
담배도 안 피웠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그 질문만 끝없이 맴돌았어요.
모든 움직임의 동력을 잃어버렸던 순간이었어요.
매트 위로 나간 건, 감정이 정리돼서가 아니었어요.
같이 수련하던 언니들의
“너 암 걸렸다고 말했는데, 요가 안 나오면 우리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니?”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어요.
걱정하는 사람들을 더 염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땐 그랬어요.
나가면 조금 나아질 거란 기대는 전혀 없었지만
그저,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던 거죠.
<매트 위, 마음이 흐르기 시작한 자리>
매트 위에 손을 얹긴 했지만,
처음엔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려 했는데,
비어 있는 머릿속으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거예요.
어떤 동작에서는 괜찮다가도,
숨을 들이쉴 때, 팔을 들어 올릴 때,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목 안이 말라붙는 느낌과 함께,
가슴 깊은 데서부터 훅- 하고 위로 솟구쳤어요.
말도, 숨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고,
눈까지 메마르는 그 기분.
그렇게 수련 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 적이 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화장실로 뛰쳐나간 적도 있었고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매트에 앉아 있었죠.
그리고 다들 고맙게도, 모른 척해줬어요.
그럴 때마다,
수련이라는 게 이렇게 불편한 거였나 싶었어요.
내 모든 감정을 매트 위에 꺼내게 되는 거였구나-
그때 처음 느꼈어요.
온전히 나의 몸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안에 묵혀 있는 담아두고 싶었던 감정들이
자꾸 목 밖으로 치고 올라오는 그 기분.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게 되니,
몸은 그대로였지만
어느 틈엔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고,
저 스스로와 덜 싸우게 됐어요.
집에 혼자 있을 땐 그 감정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는데, 바깥공기를 마시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으니, 걱정은 여전했어도 하루가 조금 덜 무겁고 더 조용히 흘러갔어요.
그 모든 게,
참 민망하고 어수선했지만-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무드라가 아닌 순간이 없었어요.
아주 작은 몸짓이 감정을 움직였으니까요.
그 일을 겪고서 알게 되었어요.
손끝이, 마음보다 먼저 반응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말로 꺼내기엔 너무 깊은 마음이 있을 때-
함부로 꺼내기엔 너무 조심스러울 때-
말없이 두 손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멈춰 있던 감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다는 걸요.
<몸이 먼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요가에서 말하는 무드라는 내 마음의 모양을 몸으로 꺼내 보여주는 상징이에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분위기를 바꾸고 몸가짐을 다잡아 더 깊은 몰입과 깨달음으로 들어가게 도와주는,
몸의 작은 움직임들이기도 하고요.
흔히 ‘합장’이라고 부르는,
손가락과 손바닥을 나란히 모아 가슴 앞에 붙이는 무드라가 있어요.
이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을 일으킨다고 해서 나마스카라 무드라(Namaskar Mudra)라고 불려요.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손바닥과 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한 모양은 친 무드라(Chin Mudra)
그 반대로 아래를 향하게 하면
갸나 무드라(Gyana Mudra)라고 해요.
생각을 맑게 하고, 집중을 도와주는 손의 형태예요.
두 손을 배 앞에서 포개는
디야나 무드라(Dhyana Mudra)는
호흡을 느긋하게 만들고, 마음을 부드럽게 진정시켜 줘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디야나 무드라가 불교에서 부처가 깊은 몰입과 고요 속에 앉아 있을 때 짓는 손 모양, ‘선정인(禪定印)’과도 같다는 거예요.
말없이도 수행자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오래된 무드라이기도 하죠.
서로 다른 길에서 전해지는 손의 모양이 결국,
고요한 마음 하나로 이어지는 걸 보면-
몸이 먼저 깨달음을 기억한다는 걸,
옛 수행자들은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이런 무드라들을 가만히 따라 하다 보면,
마치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마음이 그 흐름을 뒤따르는 것 같이도 느껴져요.
그래요.
말보다 먼저 반응하는 건 늘 손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손가락을 모으고, 조용히 손바닥을 펴거나,
눈을 감고 눈썹 사이 어딘가를 바라보기도 해요.
만약 누군가가 본다면 조금 이상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한텐, 그게 감정의 입구 같은 거거든요.
<변화는 손끝에서부터...>
무드라는 단순한 손가락의 모양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나를 조금 바꾸고 싶은 작은 의지일지도 몰라요.
아침에 창문을 여는 순간,
지난밤 내 체온이 묻은 이불을 개어내고,
요가복을 끌어올려 입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려 바깥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바라보며,
매트 위에 손을 얹게 되는
그 작은 모든 움직임이 저를 조금씩 달라지게 만들었어요.
그 후로, 손을 쓰는 매 순간이 달라졌어요.
그저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앉아 있을 때조차,
전보다 천천히,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내가 나를 다루듯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그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작지만,
그 조용한 몸짓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데리고 가기엔 충분했어요.
지금도 저는,
매일 아침 매트 위에 손을 얹고,
매트 위 양발로 조용히 일어서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내쉬고, 다시 아주 깊게 들이마셔요.
그 수많은 무드라 속에 내 감정이 따라오기를 기다려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그 작은 반복들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해 주니까요.
그렇게 멈춰 있던 흐름이
손끝에서 아주 천천히 다시 이어지기 시작해요.
그 작은 변화들은 아무도 모르게 쌓여왔고,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내 안 어딘가에 고요하게 머물러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도,
손끝은 말없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해요.
다음 편 – 그렇게까지 해본 적이 있나요? Part1
갑상선암을 회복하고, 다시 매트 위에 선 저는
그날부터 마치 귀신 들린 듯이(!) 수련을 하기 시작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잘한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못 한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멈출 수가 없었어요.
다음 편에서는 그런 몰입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요가 안에서, 그리고 삶의 조각들 속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 지나왔을
그 감정에 대한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