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 끝에서 알게 된 것들
갑상선암 수술 이후,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언제 다시 아플지 모른다는 불안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이번에는 매트 위에서,
저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시작했어요.
<수련이라는 이름의 폭주>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요가원 앞,
그 자리에 제가 있었어요.
수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매트 위에 올라가 있었고,
두 타임을 연달아 들었어요.
쉬는 시간?
그건 그전 시간에 배운 아사나를 점검하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숨을 고를 때,
저는 여전히 몸의 정렬을 조정하고 아사나에만 집중했어요.
그렇게 오전 내내 요가원에만 있었고,
심지어 저녁 수업에도 또 나간 적이 있어요.
저녁 수업까지 또 갔을 때,
요가원 실장님의 ‘너 또 왔니...’ 하는 그 표정.
놀라움과 약간의 걱정, 그리고 말없이 던지는 질문 같은 눈빛.
저는 그 얼굴을 아직도 기억해요.
주말에도 절대 쉬지 않았어요.
주말 일정이 모두 끝나면,
거실 한편에 매트를 펴고 나의 수련을 이어갔어요.
들인 시간과 열정에 비례해서,
저의 몸은 분명하게 성장해 갔어요.
'역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결국 내 몸뿐이야'
그렇게 감탄하며,
하나하나 아사나를 성취해 내기 시작했어요.
하나의 아사나를 해낼 때마다,
마치 다음 문이 열리는 것처럼
또 다른 아사나가 매트 위로 저를 불러냈어요.
마치 몸이 먼저 나를 부르는 듯한 그 순간들—
그럴 때면 성취감이 저의 뇌를 톡! 하고 건드렸어요.
'도파민이 터진 다는 것이 이런 건가?'
힘들었던 아픔의 시간은 어느새 저 멀리 밀려나 있었고,
이제는 정말 건강해졌다고,
그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을 견뎌낸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고 느껴졌던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매일의 수련은 이어졌고, 열기는 식을 줄 몰랐어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의 저는 마치 귀신 들린 사람 같았다고 해요.
혹은, 폭탄에 불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고도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그렇게 보일만했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트에 올랐어요.
더 깊은 후굴, 더 정확한 정렬—
결국 더 고난도의 아사나를 해내기 위해서였어요.
그때의 저는, 정말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수련했어요.
수련만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느낌으로,
몸을 온전히 던졌어요.
<몰입의 부작용, 부황자국>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사나는 더 이상 늘지 않았고
온몸에 부황자국만 늘어갔어요.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어깨는 이미 단단히 굳어 있었고, 걸을 때마다 고관절이 묘하게 뒤틀리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자세는 분명 정확해졌는데,
이상하게 호흡은 점점 짧아졌고
유지하는 것도 더 힘들어졌어요.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저의 몸은 이미 SOS신호를 보내고 있었어요.
"이제 그만해."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 뿐...
<욕심과 몰입 그 사이 어딘가>
그게 '과도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 '더 깊이'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욕심과 몰입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고,
그 차이는 누구도 대신 말해줄 수 없었어요.
그건, 정말 깊이 몰입해 본 사람만이
스스로 자각해야만 알 수 있는 감각이에요.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이제는 수집의 시간이 아니라, 깊어지는 시간이구나.
아사나는, '쌓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 안에 오래 머물며, 조금씩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는 일.
정복하려고 반복하는 게 아니라,
한 동작 안에서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무는 연습.
그리고 충분히 해봤기에, 할 만큼 하게 되는 그 마음.
그것은 포기가 아니에요.
끝까지 몰입해 봤기에,
비로소 몸 안에 깃드는 그런 지혜예요.
<흔들림 안에서 감각하기>
책에서 말하는 요가의 아사나는
'몸을 사용하는 자세'라고 풀이되지만,
단순히 몸을 넘어서 마음까지 함께 사용하는 과정이에요.
특정 자세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불안정한 균형 위에서 버티며,
흔들리는 내 안을 따라 들어가 보는 것.
그건 매번,
조금씩 무너지는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이었어요.
비라바드라아사나1, 일명 '전사 1번'.
두 다리는 단단하게 뻗어 땅을 지지하고,
두 팔은 활처럼 양 옆으로 곧게 펼치는 자세.
처음엔 '이게 뭐가 어렵지?' 싶지만,
그 상태로 멈춰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해요.
허벅지가 타오르고, 팔이 점점 무거워져요.
자세는 그대로인데,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움직여요.
그때마다,
내 몸을 다잡기보다 먼저 내 마음부터 다잡아야 했어요.
흔들리는 건 근육이 아니라, 감정이었어요.
아사나는 결국,
그 모든 흔들림을 통과하는 감각을 훈련하는 자리였어요.
몸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도 따라 흔들리는 걸 받아들이는 일.
그걸 견디며 다시 자세에 집중하는 그 일련의 과정.
그것이, 비로소 '아사나'일 것이에요.
<몰입이 지나간 자리>
몰입은 그렇게 다시 시작돼요.
'자세를 완성했느냐'보다,
'그 자세를 향해 어디까지 밀고 들어갔는가'로.
이번에는 도장 깨기처럼 정복해서 수집하는 컬렉션이 아니라,
끝까지 매달려보고,
온전히 집중해 보는 자리로 바뀌었어요.
아사나는 멈춘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감각과 생각이 밀려오고,
머뭇거리다, 맴돌다, 다시 흐르며 지나가요.
겉으론 고요하지만,
내 몸은 매 순간 섬세하게 조율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요.
요가란, 가장 평온해 보이지만 가장 바쁜 움직임.
그 순간들이 이어지는 흐름이에요.
바로 그 안에서—
균형 아닌 어떤 납득 같은 것이 찾아와요.
저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어요.
지금 이 자세 안에서, 나는 정말 나와 함께 있는가.
내 시선은, 내 감정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한 번쯤은
진심으로 흔들려본 사람만이,
몰입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요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에요.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한 문장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질 때.
파워포인트 글씨 크기를 한 포인트씩 조절하다,
문득 좋은 문장 하나가 떠오를 때.
옷장을 색깔별로 정리하면서,
마음속 주름이 하나씩 펴지는 것을 느낄 때.
몰입은 그런 반복과 집중을 통과한 뒤
문득 스쳐 지나가는 감각이에요.
그 감각은 흐름 같기도 하고, 여운 같기도 하지만—
내 안 어딘가를 확실히 지나간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짧은 몰입이 남기고 가게 될 그 무언가를
언젠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요.
다음 편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1]
한때,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제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그저 “쉬러 요가원에 온다”던 도반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땀도 흘리지 않고,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수련이 끝나면 만족한 얼굴로 조용히 귀가하던 그분.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이 찾아왔어요.
다음 편에서는,
그 도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