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후 작업 시간, 오후 4시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잠깐 눈을 붙인다.
나이가 든 게 표시가 나는지, 아니면 다들 아르바이트로 다니는 건지. 사뭇 내 나이가 많아 보인다. 간혹 내 연배의 사람들이 말을 걸기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난 똑같은 일을 하지만, 분명 저들보다 많이 받을 거야.’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기 위로를 삼지만, 이들과 섞여서 땀이 범벅이 되면서 일할 생각을 하니깐 까마득하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쉬운 업무에 배치되는 게 아니고, 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는 일용직 사람들처럼, 그날그날 할 일을 정해준다.
하나의 건물로 보이지만, 축구장이나 올림픽 경기장 크기만큼 커서, 아파트 20층 높이만 한다.
입고로 갈지, 협력업체들이 납품한 제품을 매입을 잡는 곳이다. 지난주 내내 덩치 좋은 남자라는 이유로 여기에서 근무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박스를 열어서 검수하고 바코드를 찍는 공정, 물류센터 각 위치로 물건을 진열해야 하는데, 단순 노동이라서 쉬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출고는 주문이 들어오면 상품을 제품이 쌓여 있는 곳에서 포장까지 하는 업무이다.
밀려드는 물량에 정신이 하얘진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면장갑에 구멍이 뚫렸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살짝 트기까지 했다. 없는 것 없는 생활용품들이 가득한 곳에서, 내 튼 손과 내 마실 물은 충분히 없었다.
“힘드시죠? 어르신.” 넉살 좋은 아줌마가 말을 건넨다.
“전 3달 됐어요. 어르신은 몇 일 안 되셨죠?”
“저 어르신 아니에요.”
“ㅎㅎㅎㅎ 여기 또래보다 연배가 있으셔서, 저하고 비슷하신 거 같아서요 ㅎㅎㅎ”
내가 너무 뚱뚱했나 보다. 아무하고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본사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내 월급이 이들의 몇 명의 월급보다 많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다.
“여기 물 있어요. 아까 받아놨어요. 매번 오자마자 정수기에 물 받아놔요. 저것도 거의 선착순이라서요.”
본사에서 탕비실에 가 있으면 항상 놓여 있던 정수기와 물, 항상 사놓은 간식들이 여기에서는 전혀 없었다. 식수로 제공되는 물조차도 더운 날씨에 항상 경쟁을 해야 했다.
“여기 정수기가 3~4개뿐이 없어서, 항상 이래요. 정수를 수돗물로 하는 것으로 해 달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그게 결재가 늦어진다고 해서, 다음 달에는 바뀌겠죠.”
여기의 동료는 동료가 아니었다. 일용직,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물을 마시기 위한 경쟁자, 소모품처럼, 아니, 부속품처럼 느껴졌다. 자동화가 아닌, 내가 그들의 상품을 이동하는 하나의 팔 다리가 될 듯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처럼 나의 회사 생활은 그렇게, 정말 단순노무직으로 변해 가는 듯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나도 잘하는 게 있을 텐데. 그동안 내 경력은 뭐지? 어느 순간에 난 이렇게 되었지.”
일하다 보니 11시가 되어, 야참이 있어서 내려갔더니 컵라면이 놓여 있었다.
본사에 항상 대기 중이던 뜨거운 물이 없었다. 과자인지, 라면인지 모르겠지만, 시장반, 야참으로 흡입을 했다. 식당은 지하 1층, 근데 물류센터의 중심은 사람이 아니고 물건들이었다.
사람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저녁 시간, 야참 시간, 그 시간에 순식간에 이동을 해야 하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식사도 부실한데 5층까지 한 번에 올라갔다 오면 배가 다 꺼져 버려요. 차라리 안 먹는 게 나아요.” 하면서 쉬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간혹, 아니 자주,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는 막아 놓았다.
“아이고, 다리야. 계속 서 있는데 고된 5시간의 작업 시간을 견디고, 또 계단을 어떻게 오르락내리락 해?”
서로들 일용직이든, 정규직이든, 업무 환경은 똑같았다. 업무 마감은 새벽 3시 반인데, 그 시간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끝나지 않는 라인,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인원만 2000명이 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내가 제일 월봉이 높겠지? 같은 일을 하는데.’ ‘근데 왜 만족을 못하겠지? 내가 여기서 이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지. 월급이 나오니까 마누라랑 애들이 살기는 하는데, 내가 이 나이에 이 일을 해야 할까?’
그전에 받던 돈과 같은 월급이었지만, 내 수준에 걸맞지 않은 대우, 주변 사람들, 하루를 일하면서 느끼는 그 어떤 보람도 없었다. 그래도 참아야 하는데, 하루하루가 괴롭다.
그냥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 학업기에 있는 아이들, 대학 때까지는 버텨야 하는데. 이런 생각,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그래도 대기업 다니는 잘난 아들이었는데, 어디 가면 동네 사람들 만나면 자랑하는 아들인데. 이렇게 사는 걸 알까? 챙피해서 말도 못 꺼냈다.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에서, 겨울이면 따뜻한 냉방이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아랫사람들이 올리는 것에 사인만 하시는 줄 안다.
냉난방이 전혀 안 되는 창고에서 근무하는지 모르신다. 아이들은 알까?
“아빠 지금 보직이 변경돼서 창고에서 근무해.”
속상한 마음을 꽉 누르며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그냥 시크했다.
“그래? 월급은 같아? 창고, 재미있겠다. 그냥 물건만 옮기면 되잖아.”
그동안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주말에는 항상 외식, 근처 나들이라도 갔는데, 내가 이 월급이라도 없으면 아이들이 나를 아빠 취급이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학원을 보내주고, 뭘 사주고 하는 게 아빠의 자격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