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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위와 소통, 그 사이에서"

by 허당 언니

내가 비식품부문장으로 재 입사한 게 소문이 났는지, 이전 회사의 후배, 창업한 후배가 전화를 하고 굳이 찾아 와서 같이 저녁을 대접해야 한다면서 약속을 잡았다.


“선배님, 제가 이번에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희망퇴직하고 그냥 놀 수는 없어서, 이것 저것 여러 가지 해 봤는데, 치킨집 1년, 편의점도 1~2년하다가 접고, 쉬운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지금은 칫솔영업 10년했다고, 같이 상품 기획해 보자는 친구가 있어서, 결국 다시 여기로 돌아오네요. 정 괜찮은 제품은 OEM 생산을 했는데, 정말 괜찮아요. 칫솔이 프리미엄급이 없잖아요.“


희망퇴직 후 험난한 시절을 보낸 후배한테 밥을 얻어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부탁을 하러 왔으니, 얻어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석에서, 스시와 소주를 먹으면서, 자기가 이제 사장이니깐 대접해 드린다면서 희망 퇴직 후 제품 개발을 하게 된, 인생사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잘 얻어 먹고 왔으니, 밥값을 해야지 생각도 하고, 밑에 실무 하는 애들한테 맡기는 것도 좀 성가셨지만, 그래도 전에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후배라서 안도와 줄 수 도 없었다. 업체 상담하고, 직매입하는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매입 규모라고 해 봤자, 초두 물량 몇 백 만원 일텐데, 내가 비식품 부문장 인데, 이깟이것 하나 부탁도 못 들어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칫솔 카테고리를 담당하는 김대리 MZ를 불렀다. 카다로그와 회사 소개, 명함을 주면서, 약간의 미소를 띄었다.

“이 업체하고 미팅 좀 해봐, 내가 전에 있던 회사 동료가 퇴사하고 협력업체를 차렸는데 좀 도와주고 싶어서. 프리미엄급 칫솔이라고 하니깐 괜찮을 거야. 상담 좀 해봐”


내 개인적인 인맥임을 알리고 싶어서, 직원눈치를 보면서 꺼낸 말이었다.


“아, 네. 부문장님, 신규업체 미팅은 온라인에서 입점 신청후 하게 되어 있고, 해당 부서에서 우선 업체 평가후에 직매입 결정, 판매 데이터를 보고 직매입을 결정 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문장인데, 그걸 몰라, 일개 MD한테 내 지인의 직매입(입점)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이 되바라진 애를 좀 보소. 그냥 가서 상담을 하면 될걸, 누가 누구를 가르칠려고 들어. 생각은 했지만


“알어알어, 내가 그냥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제품이래, 한번 김대리도 써보고, 아는 후배거든. 입점 하는거 좀 도와줘” 하고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저 썩은 표정은 뭐지. 요즘 애들은 저렇게 표정관리가 안되냐. 다 이래?’


김대리는 일도 잘하고, 똑소리가 나지만, 저럴때는 정내미가 떨어진다. 내가 윗사람인데, 그냥 “네”하면 될것을 한마디라도 저렇게 던지고 싶을까? MZ 세대는 다 저런거야.

남편이 변호사라고 하더니, 지가 변호사인줄 아냐. 집도 아직 안 샀다면서, ‘어디서 건방지게.’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삼킨다.


내 시절에는 그냥 “옛썰”이었다. 근데, 세월이 변했나. 하라면 그대로 하는 애들이 없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침에 마누라가 얘기한, 문제집 두 권 사오라는 말을 잊고 있었다.

“다른 집은 아빠가 출근할 때 애들 등교도 시켜 주는데, 자기는 그냥 출근만 하잖아. 좀

내가 잊은 줄 알고 문자 넣어주는 이놈의 마누라, 지가 좀 잠실에 나와서 사오지 굳이 이것 나보고 교보문고 가서 사 오라는 머야. 하면서, 포스트잇에 적기 시작했다.


인터폴로 “ 차대리 잠깐 여기로”


“차대리 , 이따 점심시간에 서점 가서, 이 문제집 2권만사다줘. 온라인에서 품절이라고 하는데, 잠실 교보문고는 있다지 머야. 내가 점심에 임원회의가 있어서”


다른 점심약속이었는데, 내가 이 직급에 비서도 없이, 점심시간에 쪼래쪼래 교보문고에 가서, 문제집을 사온다는 것자체가 싫어서, 임원회의로 얘기를 얼버무렸다.


“네, 부문장님, 다른 시키실 일은 없으신지요? “


문제집 값을 돈을 줘야 하는데, 현금이 없어서 주지를 못했다. 차대리는 그냥 쪽지만 받고, 나갔다. 차대리는 받을 생각도 없이, 점심시간이 지나자 사왔다.

“돈 줘야지”

“아닙니다. 조카 사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맛있는 거 한번 사주세요”

이 녀석 봐라, 슬그머니 아부 떨 줄도 아네. 은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나중에 밥이나 한번 사주지. 김대리와 달리 차대리는 은근슬쩍 사람 비위 맞추는 게 기분이 좋아졌다. 업무를 어떻게 하든 한번 혼낼 일 봐 줘야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고로, 회사생활은 차대리처럼 해야지, 김대리는 따박 따박 저렇게 대들기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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