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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 Nov 05. 2024

큰 가방을 든 여자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2화

“지이이잉. 지이이잉”

창화가 기차 밖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무기력에 빠져가고 있을 무렵, 책에 몰두하고 있던 옆자리 여자의 가방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자는 핸드폰에 찍힌 이름을 보더니,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받을지 말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여보…세요.”

여자는 입술에 힘을 꽉 주어 다부지게 인중을 부풀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야! 강미정! 너 어디야? 아직 간 거 아니지?”

“………미안해. 나 지금 기차 안이야.”

“뭐? 와… 진짜 너 이러기야? 나 퇴근할 때까지만 기다리라니까 고새를 못 참고 홀랑 가버리냐?”

“너 퇴근하면 난 영영 너한테서 퇴근 못 할 게 뻔한데 어떻게 그래. 네 얼굴 보면 나 내일도 출발 못 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사도 안 하고 가버리냐? 정말 아닐 ‘미’에 정 ‘정!’ '미정'이 맞네. 정은 눈곱만치도 없어!”

“현주야, 미안한데… 나 기차 안이라 오래 통화하기 좀 그래. 나중에 내가 집에 도착해서 다시 연락할게.”

“됐어! 이 이름처럼 정 없는 기지배야. 나중에 마음 정리 다 되면 그때 통화해.”

미정은 현주와의 통화가 끝나자 읽던 책을 탁하고 덮어버렸다. 그리고 작은 한숨을 몰아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자, 창틀에 갇힌 것처럼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무기력한 표정. 한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구마를 한 소쿠리 집어삼킨 것처럼. 자신보다 더 답답해 보이는 그의 표정이 무궁화호 기차와 꽤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저기…요?”

미정은 창화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네? 저요?”

창화는 창문에 끼어 안 돌아갈 것 같던 고개를 천천히 미정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자리 바꿔 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돼요?”

“네? 네… 뭐…”

창화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조금 심각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왜… 무궁화호를 타셨어요…? 부산으로 가면 대부분 더 빨리 가는 KTX를 타는데 왜 이걸 타셨나… 해서요.”

창화는 그녀의 질문을 듣자 고개를 갸웃하더니 창 쪽으로 기댔던 몸을 의자 중앙으로 고쳐 앉으며 미정에게 되물었다.

“그럼… 그쪽은 왜 무궁화호를 탔어요?”

“아, 저는 집이 삼랑진인데 너무 시골이라서 KTX가 안 서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궁화호를 타야 삼랑진역에 바로 내릴 수 있거든요.”

삼랑진역. 아까 미정이 자리를 바꿔 앉으며 말했던 목적지를 창화는 제대로 듣지 않았다. 더군다나 삼랑진역은 창화가 살면서 들어본 적도 없는 지명이었기에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제가 초면에 실례인 질문을 드린 거 같네요. 쉬시는 데 죄송해요. 전 다시 조용히 책 읽을게요.”

미정은 창화의 표정을 읽고 있던 책보다 더 잘 읽었는지, 송아지같은 눈을 곧장 책 속으로 집어 넣으며 민망한 사과를 했다. 

“그냥… 별 뜻 없어요. 천천히 가고 싶어서요.”

읽던 책을 막 다시 펼치려는데 창화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뭐에 그렇게 안달이 났는지, 뭔가에 씌었었는지. 빨리 가려고만 했거든요. 회사도 빨리 들어가자, 승진도 빨리하자, 밥도 빨리 먹자…”

“아… 네…”

미정은 창화의 대답을 듣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을 듣자 미정은 왠지 모를 공감대가 형성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미정의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미정은 창화의 대답이 자신의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한 듯 다시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창화도 마찬가지였다. 미정에게 건조한 대답을 던진 뒤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좀처럼 창밖 풍경에 집중하며 멍하게 있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둘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책과 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어. 경식아.”

그때, 창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창화야, 괜……찮냐? 잘 가고 있어?”

“어. 괜찮아. 내 걱정하지 말고 너나 신경 써.”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인마… 아… 정말 이놈의 회사 생활 지긋지긋하다. 난 진짜 엄 상무 그 인간이 이런 식으로 네 뒤통수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식아, 난 괜찮으니까 넌 회사 오래오래 다녀. 나 정도 스펙에 이런 회사 10년 넘게 다녔으면 성공한 거야.”

“무슨 소리야, 인마. 우리 이제 한창때야. 이제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우리가 바닥 때부터 얼마나 개고생을 많이 했냐? 너나 나나 주말에도 못 쉬고 휴가도 제대로 못 가고 매일같이 야근하고. 엄 상무 그 자식이 시키는 거 다 하면서 그 인간 임원 만들어 준 게 우리잖아. 우리 청춘 다 갈아 넣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왜 네가 회사를 나가??”

창화는 경식의 말을 듣자 지나온 시간이 창밖 전신주들 전선에 걸치며 쫙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경식아, 나 기차 안이라 더 통화 못 하겠다. 다음에 또 통화하자.”

창화는 경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차창으로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는데, 이렇게 한심하고 무력한 인간이 또 있을까 싶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거… 드세요.”

미정은 소심한 목소리로 창화에게 작은 사과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창화는 미정이 갑자기 내민 사과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 제가 잘 씻어서 잘라 온 거라 바로 드셔도 돼요. 혹시나 지금 당이 좀… 당기실 것 같아서… 보기보단 아주 달아요.”

창화는 미정이 건네준 사과를 받더니, 마치 사과를 처음보는 사람처럼 한참을 응시하더니 사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우… 창화예요.”

창화는 사과를 주시하던 시선을 미정에게 힐끗 옮기며 다시 말했다.

“우창화. 제 이름이에요.”

“네? 아, 네! 전 강미정이에요.”

미정은 책을 황급히 덮으며 창화의 통성명에 답했다. 화장기없이 이목구비가 뚜렷한, 마치 한지에 그려진 서양화같은 미정의 얼굴이 그제야 창화의 눈에 들어왔다. 

“사실… 방금 통화하실 때 친구분 말씀하시는 게 수화기로 새어 나와서…”

“아, 그랬군요. 제 친구 놈 목소리가 큰 것도 있고 일할 때 통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항상 수화기 볼륨을 최고로 해 놨거든요. 잘못 듣거나 대화 내용을 놓치면 큰일 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좀 줄여야겠네요. 죄송해요. 책 읽으시는 데 제가 방해를 했어요.”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저도 사실 책 내용이 눈에 안 들어오고 있었어요. 사실 이 책, 별로 재미없어요.”

미정은 책 표지를 바라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왜 사람들은 항상  더 높이 올라가려고만 할까요?”

사과를 한참 응시하던 창화가 머리 위에 있는 기차 선반을 쓱 올려다보며, 뜬금없이 미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정은 창화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위에 있는 선반을 함께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산 턱에 있는 무덤 보여요?”

미정은 창화의 뜬금없는 두 번째 질문에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차피 우리는 저렇게 땅 아래에 묻힐 건데 왜 사람들은 그토록 위로만 올라가려고 할까요? 물론 저도 한때는 그랬지만…”

본의 아니게 창화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된 미정은, 마치 그가 모든 것을 잃고 강가에서 혼자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정은 자기 혼자만 강가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강 건너편에 자신과 같은 사람을 발견한 것처럼, 살짝 반가운 기분이었다. 미정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더니, 

“그러게요. 이렇게 사과 한 입에도 충분히 기분 좋아지는데 말이죠.”

라고 말하며 창화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러자, 창화도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 사과… 정말 다네요. 맛있어요.”

“그렇죠? 사실 제 고향에서 나는 사과예요.”

“고향이라면 아까 말씀하신 삼랑진인거죠?”

“네. 엄밀히 말하면, 밀양 사과가 엄청 유명해요. 삼랑진은 밀양시 안에 있는 작은 시골이고요.”

창화와 미정은 어느새 함께 사과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사과 한 입을 베어 먹었을 뿐인데 가슴 속 답답함도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저도 궁금한 게 생겼는데 물어봐도 돼요?”

전형적인, 말수가 적은 사람처럼 보였던 창화가 미정에게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럼요. 단, 호구 조사만 빼고요.”

미정은 창화에게 농담 섞인 말을 던지며 흔쾌히 응했다.

“사실 처음에 어디에서 내리신다고 했을 때, 거기가 어딘지 자세히 안 듣고 자리를 비켜드렸어요.”

“아, 지금이라도 자리 다시 바꿔드릴까요?”

“아뇨,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아까 다시 말씀하셨을 때 삼랑진역에 내리신다고 하셔서 그제야 삼랑진이라는 이름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말인데 삼랑진은 어떤 곳이에요?”

창화의 질문에 마치 미정은 자주 듣는 질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서울에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에요. 사람들이 저한테 고향이 어디냐, 본가가 어디냐 이렇게 물으면 당연히‘삼랑진이요.’라고 대답을 하죠. 그럼, 사람들 표정이 거의 다 똑같아요.‘대한민국에 그런 동네가 있어?’라는 표정. 그런데 사람들 참 웃겨요. 그렇게 세상 처음 듣는 동네 이름을 들어 놓고도 명절이 되면 또 물어요.‘미정 씨는 집이 어디랬지?’이렇게. 사실 제가 어디 출신이든 고향이 어디든 관심도 없는 거죠.”

“아… 죄송해요. 그런 뜻으로 물은 건 아니에요.”

“아뇨, 아뇨. 알아요.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음… 사람들이 그렇더라고요. 계속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관심도 없는 것들을 묻고 또 답하고 그래요. 저는 회사에서 일할 때 정말 급하지 않으면 화장실을 잘 안 갔어요. 화장실 가는 길에 회사 사람을 마주치면 그게 그렇게 어색하더라고요.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기도 좀 그렇고. 차라리 점심시간 이후면 좀 나아요.‘점심 먹었어? 뭐 먹었어? 맛있었겠네.’이런 걸 물으면 되니까. 그런데 이 질문도 웃기죠. 사실 내가 점심을 먹었는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뭘 먹었는지는 더 관심도 없으니까요.”

창화는 미정의 얘기에 자신도 그랬다고, 그래서 공감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미정은 창화가 겉보기와는 달리 의외로 말수가 많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창화는 말수가 적은 것이 아니라,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환경에 갇혀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재갈을 물려 놓았던 것처럼.

“아, 미안해요. 미정…씨 하던 얘기 계속해줘요. 제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네요.”

“훗, 사실 전 아까부터 창화…씨가 말수가 적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대화가 잘 돼서 제가 읽던 책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재미없어 보였어요?”

“아! 조금 전까지는 어쩌면 이 책 보다, 이 책을 쓴 작가보다 그리고 나보다 더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까 그거 보단 조금은 더 재미있는 사람이겠구나 싶은데, 막상 좀 억울한 것도 있어요. 결국, 제가 책 보다, 이 작가보다, 창화 씨보다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겠구나 싶거든요.”

창화는 창 쪽으로 미정은 통로 쪽으로 각자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참, 우리 동네 소개하려다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아, 그리고 삼천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삼랑진이랑 삼천포는 완전히 다른 동네예요. 어떤 분들은 제가 삼랑진이 고향이라고 하면‘삼천포로 빠질 때 거기랑 가깝나?’이렇게 물으시거든요. 이건 TMI지만 삼천포는 경남 사천시에 있고 삼랑진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밀양시에 있어요.”

미정은 창화에게 지리학 수업을 해주는 것처럼 삼랑진이 밀양시에 있는 읍 단위라는 것, 그리고 삼랑진이라는 이름은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것 등을 알려주며 삼랑진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이 사과 말고는 삼랑진에 딱히 뭐가 없네요. 막상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받으니까 어려워요. 그냥 시골이에요. KTX조차 서지 않는 아주 한적하고 작은 시골. 그래서 전 촌스러운 사람이에요.”

미정은 막상 정말 궁금해하는 사람이 삼랑진에 대해 물으니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이미 듣기만 해도 좋네요.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사람도 잘 찾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도 찾지 않을 거고, 아무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잖아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맞아요! 전 집에 있을 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듣고 보니 창화 씨 말이 일리가 있네요.”

미정은 풀리지 않던 문제를 풀어낸 것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 시골이 없어요.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요. 그래서 그런 시골을 가진 사람들, 시골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그게 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예요. 저는요. 어떻게든 삼랑진을 벗어날 생각만 했어요. 제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고. 다들 대도시로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죠.”

“그런데 왜 다시 삼랑진으로 돌아가요?”

“어? 제가 돌아간다고 언제… 말씀드렸었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창화는 미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자 건너편 자리 위의 선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휴가 가는 사람치고는 짐 가방이 너무 크잖아요.”

창화의 예리한 지적에 미정이는 아! 라는 입 모양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2024년 12월 10일 출간

작가 인스타: @author.otho

작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othop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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