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13화
미정은 오랜만에 차를 몰고 시내 쪽으로 향했다. 차를 대놓고 한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5분이 지나자 한 남자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고 미정은 그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야, 넌 누나가 왔는데 어떻게 집에 코빼기 한 번을 안 비추냐?”
“보소, 아지매. 내도 바쁘다. 그리고 집에 가봐야 누나나 내나 잔소리밖에 더 듣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말에는 집에 한 번씩 좀 오고 그래.”
“아이고… 사돈 남 말하네. 누나 서울에 살 때 기억 안 나나? 명절에 그래 좀 내려오라 해도 끝까지 안 내려오더만. 그라고 어설픈 서울말 좀 쓰지 마라.”
“뭐래? 어설프다니? 나 서울 살 때 아무도 경상도 사람인지 몰랐어. 이 자식아.”
“하이고… 서울 사람 다 됐네. 고마 됐고. 내 점심시간 짧다. 빨리 주문부터 하자.”
미정은 남동생 상욱과 점심을 먹기 위해 상욱의 회사 근처로 나왔다. 상욱은 밀양 시내에서 혼자 자취를 하며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은 할 만해?”
“그냥 하는 거지 뭐.”
상욱은 냉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만나는 사람은?”
“없다.”
“저번에 만나던 여자는?”
“그게 언제 적인데.”
“엄마가 선보라고 했던 건?”
“아… 진짜 체하겠네. 뭐 내 심문하나? 그냥 밥 좀 묵자.”
상욱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미정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야, 누나가 동생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도 못 물어보냐?”
“내 근황 신경 쓰지 마시고예. 누나 인생이나 신경 쓰이소.”
사실 오늘 미정이 상욱을 보러 나온 건 순전히 엄마의 의도였다. 엄마는 혼자 사는 상욱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게다가 서른 중반이 넘어선 상욱이 제 짝을 만나고 있지 않은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마음에 걸려 미정을 통해 상욱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었다.
“엄마가 걱정 많이 해. 나도 나지만 너라도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결혼하라고,”
“누나.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진부한 얘기는 이제 좀 고마하자. 내 알아서 할게.”
“엄마가 오죽하면 나한테 좀 물어보라고 했겠어? 너한테 이런 얘기 꺼내면 너 또 화내고 싸우니까…”
“아, 진짜… 알면 좀 고마해라. 누나도 이런 얘기 듣기 싫어가 명절에도 집에 안 왔던 거잖아?”
“알았다. 알았어. 그만할게… 하긴 나도 듣기 싫은 얘기 너도 싫겠지. 미안해. 얼른 먹어.”
미정과 상욱은 점심을 먹고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둘은 여느 남매와 다를 게 없이 별 대화가 없었다.
“회사는 어때? 이제 좀 적응됐어?”
오랜 정적을 깨고 미정이 커피에 꽂힌 빨대를 돌리며 물었다.
“뭐, 예전보단 나아졌다. 그래도 재미는 없지 뭐. 아… 여기 커피 별로네.”
상욱은 원래 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꿈. 바로 바리스타가 되어 카페를 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욱은 대학도 2년제를 졸업해 빨리 돈을 모아 카페를 열 생각만 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금방 따냈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오랫동안 하며 커피를 배우고 연구했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열심히 일하고 배우며 모은 돈으로 카페를 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욱은 부모님께 부족한 정도만 돈을 빌려 카페를 열고 반드시 갚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돼도 안 한 소리 고마하고 직장에 드가라. 니,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나? 장사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엄마, 진짜 내 얘기 한 번만 들어봐라. 내가 카페 자리까지 다 봐 놨는데 거기가 나중에 진짜 잘 될 자리다. 지금은 별거 아닌 거처럼 보여가 땅값도 싸서 해 볼만하다니까. 그냥 조금만 빌려도. 내 금방 갚을게.”
엄마는 끝내 상욱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지인의 소개로 회사에 들어가 꾸역꾸역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상욱이 점찍었던 카페 자리는 나중에 정말 외지 사람이 카페를 열었고, 시간이 지나 그 앞쪽으로 도로가 생기고 오가는 사람이 늘면서 땅값도 덩달아 올라, 이제는 정말 엄두도 못 내는 곳이 되어 버렸다.
“내는 여전히 이래 맛없는 커피를 마시면 화가 난다. 이런 걸 커피라고 팔고 있으니…”
“그래… 예전에 상욱이 네가 카페에서 일할 때 만들어 준 커피는 거의 다 맛있었지. 인정!”
“후… 내가 진짜 그때 카페를 해야 했는데…”
“이제 그만 잊어버려. 계약직으로 그렇게 고생하다가 그래도 정규직까지 됐는데 얼마나 좋아? 누나는 정규직이란 걸 해 본 역사가 없다. 그리고 지금 누나 좀 봐. 회사 안 다니니까 바로 할 일이 없는 사람 됐잖아.”
“누나, 지금은 회사를 안 다녀서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할 일 없는 사람이 회사에 다니는 거다. 알겠나? 요즘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회사 안 다닌다. 지가 할 게 없으니까 회사에 붙어있는 거지.”
미정은 상욱의 말에 뭔가 크게 한 방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를 안 다니면 할 일 없는 게 아니라 할 일 없는 사람이 회사에 다닌다.’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미정은 새삼 상욱이 오빠처럼 느껴졌다.
“내는 언젠가 회사 때려치운다. 왜냐고? 내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내도 내가 하고 싶은 거 접고 회사 들어갈 때는 진짜 너무 짜증 나고 속상하고 그랬거든? 근데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더라.”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오래 하려면 내가 하기 싫은 일도 그만큼 오래 해야 한다고.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 마음이 편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빨리 시작해서 빨리 접는 것보다 내가 하기 싫은 걸 오래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오래 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뭐, 자기 최면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은 되더라고.”
미정은 상욱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상욱이 한 얘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할 일이 없어서 회사에 다녔었네… 이제 할 일 없는 사람이 아니게 됐으니 내 할 일을 찾아야겠어.”
미정은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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