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12화
매일같이 이 동네를 돌고 또 돌면서도, 매번 창화의 발걸음이 멈추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대현 사진관’
오늘도 창화는 삼랑진역 근처에 있는 아주 작고 오래된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적어도 수십 년이 훌쩍 넘도록 한 곳에 붙어있어 온 빛바랜 간판, 그 간판의 세월과 함께 색이 바래버린 쇼윈도에 진열된 사진들. 창화는 이 사진관에 이상하게도 정이 갔다. 창화가 좋아했던 영화‘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나왔던 초원 사진관이 떠오를 정도로 대현 사진관 앞에 서면 이상한 낭만이 느껴졌다. 대현 사진관은 마치 삼랑진의 모든 시간과 추억을 그대로 담고 있을 것처럼, 문을 연 후 단 한 번의 바뀜도 없었다.
성인 키보다 약간 높은 높이의 사진관 위에는 옥상이 하나 있는데, 그 옥상에는 사진관 주인의 집처럼 보이는 작은 옥탑방이 올려져 있었다. 문을 닫은 지가 오래됐는지 항상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터라,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앞에 서서 항상 같은 생각을 했다.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아쉽네….’
창화는 오늘도 사진관 앞에서 삼랑진의 지난 시간만 바라보며 돌아서는데,
“사진 찍으시게?”
사진관 문이‘끼이익’하고 열리더니 누군가 창화의 등에 대고 말을 걸었다. 순간 흠칫 놀라며 돌아보자 창화의 앞에는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다. 창화는 황급히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창화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어? 혹시…”
“사진 찍을 거면 어여 들어와요.”
“아, 네, 네.”
창화는 얼떨결에 노인을 따라 사진관으로 들어갔다. 평소에 사진관 안이 궁금했지만 들어갈 엄두를 못 내는 창화였지만 오늘 사장님의 초대를 받게 된 것이다.
“무슨 사진으로 찍어드릴까? 증명사진? 아니면 여권 사진?”
“아… 저… 그게… 여권 사진으로 찍어주세요.”
창화는 계획에도 없는 여권 사진을 찍게 되었다. 의자에 앉은 창화를 카메라를 통해 빤히 바라보던 사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 동네 분이 아니신가? 처음 보는 얼굴이네?”
“아. 예. 저 잠깐 여행…”
“이 동네에 뭔 여행할 게 있다고 여행을 왔어요? 그럼 사진 찍으러 온 게 아니시네. 어쩐지 사진 찍을 사람 같지가 않더라고.”
“아… 제가 그래 보였나요?”
“보통 사진 찍을 사람이면 머리도 말끔하게 정리하고 면도도 해서 오거든.”
창화는 순간 자신의 덥수룩한 머리와 듬성듬성 자란 수염을 만져보며 얼굴을 붉혔다.
“뭐, 어쨌든 들어왔으니 차나 한잔하고 가요.”
노인은 터벅터벅 걸어 커피포트에 물을 받았다.
“어르신, 제가 할게요.”
“괜찮아요. 손님인데 그냥 앉아있어요.”
“그런데 어르신, 실례지만 혹시 얼마 전 부산행 무궁화호 기차 타지 않으셨어요?”
“응?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맞으시군요! 그때 어르신께서 저한테 사과 주셨었잖아요!”
기차에서 마주쳤던 노인이 이 사진관 사장님이라는 게 반가웠는지 창화는 흥분 섞인 목소리였다.
“아… 자네구먼! 그래… 자네야, 자네. 어쩐지 다시 만날 거 같더라니… 이렇게 또 만나는구먼.”
“그러게요, 세상 정말 좁네요. 그때 어르신께서 주셨던 사과, 정말 맛있었습니다.”
“허허,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구먼. 자, 차 들어요. 그래, 이 촌 동네 여행은 어쩌다가 온 거요?”
창화는 삼랑진에 자주 오게 된 이유를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나랑 비슷하구먼.”
“어르신이랑요?”
“나도 삼랑진이 고향은 아니야. 젊은 시절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그리고 여기가 마음에 들어 다시 떠나질 않았어. 내가 월남전 참전 용사거든. 전쟁을 겪고 고국에 돌아왔는데 남은 건 고통뿐이더라고.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 후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지.”
노인은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친한 친구 놈이 카메라 한 대를 사주면서 그러는 거야. 이 카메라로 여기저기 다니며 좋은 풍경, 좋은 순간만 담아 보라고. 그럼 점점 괜찮아질 거라고. 그래서 사진을 배우게 됐어.”
노인은 아주 오래된 낡은 카메라를 창화에게 가져와 보여주시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가 아주 묘한 곳이야. 전국을 떠돌며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여기에서 내 인생을 인화하게 된 거지.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이 아니라 자꾸 보게 되는 사람. 삼랑진이 나한테는 자꾸 보게 되는 사람 같았지. 카메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이렇게 여전히 떠나지 못하고 있지.”
자주 보게 되는 것보다 자꾸 보게 되는 사람.
창화가 그동안 이 동네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을 사장님께서 한 번에 정리해 주시는 것 같았다. 창화는 이토록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너무 반가웠다.
“여기가 좋으면 내일 또 와. 이제 이 사진관도 얼마 안 남았거든.”
“네? 얼마 안 남았다니요?”
창화는 종이컵을 입에 가져가다 멈추고 카메라 렌즈만큼 동그래진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이제 나도 쉬어야지. 요즘은 이런 사진관에서 사진 안 찍어. 그리고 내 눈도 침침해서 초점 맞추기도 힘들거든. 그리고 자넬 다시 만나게 되니… 여기는 내가 지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구먼.”
“저요? 제가 왜…”
노인은 그저 미소만 보였고, 그 미소를 본 창화는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마시던 차가 얹히는 기분이 들면서, 앞으로 이 사진관 풍경을 바라볼 수 없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무엇보다도, 방금 알게 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곧 보지 못하게 될 거란 생각에 더 슬펐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2024년 12월 11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