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17화
창화는 하루하루가 분주했고 정신이 없었다. 회사만 다닐 때는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면서, 작은 가게 하나를 여는 것도 혼이 나갈 정도로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옥탑방은 공사가 잘 됐지만, 안에 식탁이나 소파를 살 시간이 없어 창화는 여전히 바닥 생활을 했다. 하지만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고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1층 카페 공간을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고, 그 생각에 빠질수록 창화는 희열을 느꼈다.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면서 창화의 커피 만드는 실력도 점차 늘어갔다. 미리 정해둔 커피머신 자리부터 공사를 마친 후, 그곳에서 커피 만드는 연습을 매일같이 한 결과였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카페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삼랑진역 오막살이’
공사의 마지막 즈음에 카페 간판을 걸었다. 창화는 완성된 카페와 간판을 한참을 바라보며 한동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페 사진을 찍어 경식에게 보내줬다.
“이야… 그 낡고 볼품없던 건물이 이렇게 달라졌냐? 고생했다, 우창화!”
“다 네 덕이지 뭐… 경식아,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준비 못 했어.”
“알면 됐다, 인마. 대신 나는 평생 무료 회원인 거다?”
“하하, 그래. 넌 언제든 평생 무료다!”
“이제 우 사장님이구나. 우 사장, 축하해! 아 참, 근데… 카페 이름이 그 간판이 맞아? ‘삼랑진역 오막살이?’”
“응. 맞아. 삼랑진역 오막살이.”
“언제 적 오막살이야… 이름이 너무 촌스러운 거 아냐?”
“이게 다… 의미가 담겨있는 이름이야. 그 의미는 나중에 알려줄게. 얘기하자면 길어.”
창화는 공사가 끝난 카페에서 쓸고 닦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옥탑방에 들여놓을 가구도 주문했고, 옥탑에 놓은 테이블과 의자도 정리를 끝냈다. 그리고 옥탑 난간을 따라 도랑처럼 길고 좁게 꾸며진 정원에는 쉽게 키울 수 있고 잘 죽지 않는 식물들을 심었다. 이제 개업만 하면 ‘삼랑진역 오막살이’의 첫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카페 개업 날이 되자, 창화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이제 진짜 손님을 맞이한다는 생각에 새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개업 날이니만큼 모든 메뉴의 가격을 반값에 주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오전 10시 오픈. 주변 상인들이 카페 앞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갔을 뿐, 정오가 되도록 주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기, 여기 사장님이신가예?”
적어도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커피머신이 놓인 창문 앞에서 창화를 빼꼼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우창화라고 합니다.”
“아, 내는 저기 건너편에 미용실. 어디 사람이라예?”
“저는 부산에서 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부산이면 바로 옆이네. 오늘 개업인데 이래 장사가 안 돼가 우짜노? 고마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이소.”
드디어, 삼랑진역 오막살이에 첫 주문이 떨어졌다. 창화는 기쁜 마음으로 커피를 내렸다.
“아직… 총각?”
미용실 사장님은 커피를 만드는 창화에게 궁금한 것이 엄청 많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예… 뭐…”
“옴마야… 키도 크고 참하게 생긴 총각이 이런 촌에 만다고 카페를 열어가 생고생이고… 내가 미용실 손님들한테 여기 카페 열었다고 많이 얘기해 줄게요. 그래도 인자 가까이에 커피가 생겨가 참 좋네!”
“고맙습니다. 여기 커피 나왔어요. 오늘은 개업이라 반값만 내시면 되세요.”
“아, 그래예? 그럼 고마 한 잔 더 주이소. 이따가 머리 하러 오는 아지매 한 잔 줘야겠다.”
미용실 사장님은 고맙게도 커피를 두 잔이나 주문했다. 창화는 커피를 한 잔 더 내리면서 조심스레 미용실 사장님께 물었다.
“저기 사장님, 커피 맛은… 어떠세요?”
“맛? 괜찮은데? 근데 내사 마 커피 맛은 잘 몰라. 호호. 근데 내는 너무 쓴 거보다 이래 덜 쓴 게 딱 좋아요.”
창화는 미용실 사장님의 커피 맛 품평에 조금은 안도했다. 아직 커피는 많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아는 창화인지라, 손님들의 반응이 가장 궁금하고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토요일에 오픈을 했고 몇몇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긴 했지만, 정말 삼랑진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개업 날, 판매 실적 커피 다섯 잔. 하지만 창화는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창화가 만들고자 한 카페는 커피를 많이 파는 카페도 아니고, 커피만 사서 홀연히 떠나는 사람이 많은 카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한 카페는 좁은 공간이지만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 카페, 루프탑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낮지만, 옥상에 앉아 하늘을 가까이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였던 것이다.
이런 카페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창화도 잘 알고 있었다. 삼랑진역 오막살이가 자꾸 보게 되는 곳이 되기까지의 시간 말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카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닌, 사람 우창화가 좋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어? 엄마 머리했어?”
아침 일찍, 마당에 널렸던 빨래를 걷어 소파에 앉아 개고 있던 미정이 방에서 나오는 엄마를 보며 말했다.
“이야… 그래도 니는 알아보네. 느그 아빠는 엄마가 파마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엄마가 머리를 빡빡 밀어도 모를걸? 하물며 원래 파마머리에 파마 다시 한 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보겠어?”
엄마는 미정의 옆에 앉아 빨래를 함께 개기 시작했다.
“아, 맞다. 니 그 사진관 자리에 카페 생긴 거 아나?”
“응.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그런 자리에 카페를 열었을까?”
“내 말이. 안 그래도 머리 하러 갔는데 미용실 아지매가 사진관 없어지고 새로 생긴 카페에서 사 온 거라고 커피를 주길래 그거 마시면서 알았다 아니가.”
“그래서, 커피 맛은 있고?”
“엄마가 커피 맛을 알겠나? 그냥 주니까 마셨지. 내는 아메리카노 말고 그… 뭐시고? 해질녘인가? 달달한 그거 좋아한다.”
“아… 헤이즐넛. 엄마, 해질녘이 아니라 헤. 이. 즐. 넛.”
“그거나 그거나 가스나야. 미용실 아지매 말로는 카페 사장이 키도 훤칠하고 젊은 총각이라 카드라.”
엄마는 수건을 개며 미정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왜? 뭐?”
“나이도 니랑 얼추 비슷한 거 같다는데…”
“그래서?”
미정은 엄마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빨래 개기에만 집중하며 건조하게 물었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고? 그냥 그렇다고 가스나야. 가서 커피나 함 무봐라. 개업했다고 커피도 싸게 팔고 있다는데. 가면 내 해질녘도 하나 사 오고.”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를 이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미정은 다 갠 빨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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