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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자리에 뭘 연다고 하네요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16화

by 오서 Dec 24. 2024

창화는 자신이 그리는 공간 만들기에 몰두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인테리어 업체에 문의를 하고 괜찮다고 소문난 공간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담고 싶은 것들을 담아냈다. 

“야, 우창화.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냐? 좀 전에 디자인팀 원식이 형이랑 얘기하는데 네 얘기가 나왔어. 형이 그러는데, 너 가게 인테리어 한다고 이것저것 물어봤다고 그러더라. 대체 뭐 하려는 거야?”

경식은 창화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궁금해 참지 못하고 창화에게 전화했다.

“아직 구상 중이야.”

“야, 너 이러면 나 진짜 섭섭해. 그냥 대충 뭐 하려고 하는 건지 나한테는 얘기해 줄 수 있잖아. 그 낡고 낡은 건물에서 대체 뭐 하려고?”

창화는 경식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실 창화도 아직까지 뭘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삼랑진역 같은… 공간으로 만들어 보려고.”

“뭐? 뭔 역? 삼랑진? 이건 또 무슨 뚱딴지야… 알아듣게 좀 얘기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 테니까. 그래도 퇴사자보다 현직자가 부탁을 해야 더 먹히지.”

사실 경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에게 일과 관련되었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창화는 혼자 이 큰일을 해낼 수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기에 경식에게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기를 동네 사랑방처럼 만드시겠다?”

“일단 지금 계획은 그래.”

“그래. 거기까지는 좋아. 그러면 거기서 뭘 팔 건데? 그냥 열어두고 아무나 와서 앉았다 가십시오! 이럴 거야? 사람들이 편하게 오려면 너도 뭘 해 놔야지.”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1층에는 작은 카페를 하고 2층 옥탑에는 루프탑처럼 작은 정원이랑 객석을 만들까 해.”

“그럼, 결국 카페네? 그 촌 동네에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있겠냐?”

“커피만 있는 카페가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차나 음료를 많이 하려고.”

“근데… 너 커피는 만들 줄 알고? 차는? 차는 알기나 해?”

그러고 보니 창화는 자신이 찻집 운영에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기술과 경험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야, 어차피 일은 저질러졌으니 내가 더는 말리지는 않을게. 일단 너 거기 도면이나 나한테 보내. 내가 인맥 총동원해서 인테리어는 알아봐 줄 테니까, 넌 커피부터 배워. 그래, 차는 티백으로 타 주면 되지만, 카페 사장이면 적어도 커피는 내릴 줄 알아야지.”

경식이 말하는 퇴사자가 창화임에도 불구하고, 발 벗고 나서서 자신을 도우려는 마음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고맙다. 경식아.”

“미친… 고맙다는 말은 나오긴 하냐? 아, 맞다. 너 지금 뭐 학원 가서 커피 배우고 할 시간 없으니까 내가 알려주는데 가서 속성으로 배워. 부산에 대학 후배 한 놈이 카페 운영하고 있거든. 넌 거기 일 도와주고 시급 대신 커피 배우고, 어때?”

“나야 좋은데… 너무 폐 끼치는 거 아닐까?”

“괜찮아. 내가 대학 다닐 때 그 자식 먹여 살렸다. 내 부탁이면 무조건 들어줄 거야.”

창화는 경식의 도움으로 많은 짐을 덜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짐을 덜 차례였다.  



   

“저, 곧 이사 나가요.”

“뭐? 갑자기? 어디로? 어디 취직이라도 된 거야?”

갑작스러운 창화의 출가 선언에 저녁을 드시던 엄마와 아버지의 숟가락이 일시 정지가 되었다.

“멀지는 않아요. 삼랑진이라고 부산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이에요.”

“삼랑진? 저번에 엄마가 얘기했던 밀양 거기? 갑자기 거기는 왜? 무슨 회사야?”

“회사는 아니고… 저 거기 작은 건물 하나 샀어요. 옥상에는 집도 있어서 거기서 지내면 되고요. 1층에는 작은 카페를 열어서 운영할 거예요.”

창화의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다시 창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놀라실 거 아는데 제가 해 보고 싶어서 결정했어요. 나중에 가게 공사 다 끝나고 문 열면 한번 오세요.”

평소에 말씀이 없으신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창화의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열었다.

“준비는 잘했고?”

“네. 경식이가 많이 도와줘서 준비는 잘하고 있어요. 사실 이거 준비하느라 요즘 계속 바빴어요.”

엄마는 궁금한 게 더 많았는지 창화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주며 물었다.

“어떻게 생긴 가게야? 동네는 괜찮고? 사람은 많아? 가게는 목이 좋아야 하는데…”

창화는 엄마의 많은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알아보고 준비 잘하고 있어요. 다 완성되면 그때 보여드릴게요. 곧 이삿짐 챙겨서 그쪽으로 갈 거니까 개업할 때 꼭 오세요.”

“이제 반백 살이 다 되어가는 자식 놈이 뭘 하든 꼬치꼬치 묻지 말어. 저도 다 생각이 있겠지. 알았으니까 밥 먹자. 개업하기 전에 고사는 꼭 지내고.”




창화는 단시간이지만 창화가 소개해 준 후배로부터 커피의 기본을 익혔다. 그리고 공사를 먼저 시작한 옥탑방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자, 이삿짐을 챙겨 바로 삼랑진으로 떠났다. 창화는 옥탑방에서 지내면서 매장 인테리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아직 부족한 커피 내리는 기술을 미리 사 둔 커피머신으로 연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꾸 보게 되는 삼랑진 풍경을 매일 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미정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이력서를 쓰고 새로 찍은 증명사진도 넣었다. 딱히 어떤 일을 하고 싶다거나 어느 회사를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삼랑진에서 소 일거리 삼아 할 수 있는 일이면 족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던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미정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워낙 책을 좋아해 작가가 되거나 출판사에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미정에겐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익숙했고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 좋아하던 책이 일로 바뀔 것 같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좋아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것. 그것도 미정이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였다. 미정은 오래전부터 블로그에 생각이나 감정을 쓰거나 책의 서평을 쓰곤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해 블로그를 한참 동안 비공개로 운영을 하다가, 라디오에서 한 작가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공개로 바꿨다.     


“자신이 글을 못 쓴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남들에게 글을 못 보여주게 되는 거죠. 전 그런 분들에게 정말 가차 없이 얘기합니다.‘정말 오만하시네요.’라고요. 왜냐고요? 글을 잘 쓴다, 못 쓴다는 독자가 판단하는 거죠. 어디 감히 작가가 판단합니까? 전 자신의 글을 자신이 판단하는 건 오만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일단 쓰세요. 그리고 많이 보여주세요.”      

미정은 블로그를 열어보며 예전에 자신이 쓴 글을 읽어 보았다. 지금 다시 보니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부터 여전히 괜찮은 글까지, 예전에 가졌던 감정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진열해 두고 있었다.

“이제, 그것도 다시 해봐야지.”

미정은 검색창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신인 작가 등단 공모전’

꼬깃하게 구겨놓았던 한 장의 꿈을 미정은 다시 펼치고 있었다. 그동안 받은 소외와 상처, 그리고 상처 틈새에 박혀있어 여전히 쓰라린 기분. 이것들을 다 빼내고 상처를 닫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성토할 수 있어야 했고, 그걸 한 장의 꿈속에 넣어 남 얘기처럼, 제삼자가 되어 방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게 지금의 미정에게 주어진 가장 절실하고 유일한 목표였던 것이다.

“미정아, 방에 있나?”

“어, 왜?”

“니 얼마 전에 삼랑진역 옆에 그 사진관 갔었다 아이가? 거기 지금 뭐가 새로 들어 올라나 공사하던데 니 혹시 아나?”

“응? 거기를 공사해?”

미정은 방에서 나와 마실 다녀오는 엄마 앞에 서서 물었다.

“어, 뭐가 생기는지는 몰라도 안에 다 때려 부수고 난리더라. 그카고 옥상에 있제? 그 사진관 옥상에 원래 거기 주인 영감님이 사셨거든. 거는 이미 깔끔하니 새집처럼 지어 놨드라.”

“에이… 그럼 그냥 집으로 짓겠지. 2층 다 지었으니까 이제 1층 공사하나 보네.”

“아이다. 1층은 영판 없는 무슨 가게다. 무슨 집을 지을 거면 간판 자리는 와 남겨놨겠노? 내는 인자 알았는데 오늘 나갔다 오니까 요즘 그 사진관 공사하는 게 동네 최대 관심사드라.”

사진관이 문을 닫아도, 또 그 자리에 뭔가 문을 열어도 이렇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관심을 갖는 곳. 이게 미정이 태어나고 자란 삼랑진이었다.     




미정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이런 삼랑진이 너무도 싫었다. 말 그대로 옆집 수저가 몇 개인지도 아는 좁은 동네. 누가 상을 타도, 누가 사고를 쳐도,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는 동네. 사춘기의 미정은 프라이버시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동네가 너무 싫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관심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관심이 없다는 건, 외면받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에, 미정은 새로운 동네 소식이 반갑게 여겨졌다.

“어라? 너 요즘 부쩍 나한테 전화 잘한다? 이제 좀 관심의 척도가 올라갔구만?”

현주는 미정의 전화를 받으며 새침하게 굴었다.

“야, 그때 내가 사진관 문 닫았다고 했잖아? 거기 지금 공사 중이래.”

“그래? 뭐 생기는데?”

“그걸 나도 모르겠어서 너한테 전화한 거야.”

“나한테? 왜? 난 지금 서울인데 네가 더 잘 알아야지.”

“너희 삼촌이 그쪽 삼거리에서 부동산 하시잖아. 네가 삼촌한테 좀 물어봐.”

“야, 그 촌구석에 가게 하나 생기는 게 뭐 대수냐? 생기면 생기는 거지 그걸 뭘 또 물어봐… 아니면 네가 직접 가 봐.”

“음… 그럴까?”

“근데 왜 갑자기 그 사진관에 꽂히셨대?”

“꽂힌 거까진 아니고… 네 말대로 이 작은 촌구석에… 그리고 그 오래된 낡은 건물을 공사해서 뭔가 생긴다는데 예사롭지 않지 않아?”

“응. 예사롭지 않지 않게 멍청한 인간인가 보네. 제정신이면 그런 동네에 그런 건물을 돈 주고 사서 또 돈 주고 공사까지 하겠냐?”

“그치? 그래서 신기하다는 거야. 대체 어떤 사람이 뭘 하려고 그런 자리에 돈을 뿌리고 있는지.”

“뭐… 끽해봐야 복권 판매점 같은 거겠지. 그 작은 건물에 해봐야 뭘 하겠어? 아니다. 이러지 말고 내가 삼촌한테 물어볼게. 기다려. 아윌비백.”

현주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세상에… 진짜 미친놈인가 봐. 거기에 카페를 연대! 그것도 멀쩡하게 생긴 외지 남자 사람인데 옥상에는 자기가 살고 아래에는 카페를 한대. 세상에나… 거기에 카페 할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든지 아니면 그렇게 뿌려도 될 만큼 돈이 많던지 둘 중 하나네.”

“카페…를?”

“야, 강미정, 혹시 아냐? 외지 남자 사람인데 뭐, 키도 크고 겉은 멀쩡하다니까 나중에 오픈하면 한번 가 보던지. 흐흐”

“뭐래… 그 느끼한 웃음은 또 뭐고… 아무튼 뭔지 알았으니까 됐네.”

“나중에 그 미친 남자 사람 보게 되면 꼭 알려줘. 어떤 인간인지 궁금하네. 그리고 카페 열면 카페 사진도!”

“야, 됐어. 너 어차피 휴가 때 올 거라며? 그때 와서 직접 봐.”

“야, 미쳤냐? 내가 수많은 카페 놔두고 그 낡고 좁은 데 가서 커피를 마시게? 요즘 밀양에도 크고 예쁜 카페 엄청 많거든?”

미정은 사진관 자리에 카페를 연다는 것이 제정신이 아닌 게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엄마, 거기 사진관 있잖아? 거기 카페 생긴대.”

“미칫네… 꼴값도 여러 질이다. 거가 어데 카페 할 자리고?”

미정은 엄마에 이어 상욱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욱아, 너 대현사진관 알지? 우리 어릴 때부터 쭉 있었던.”

“어. 안다. 거기 문 닫은 지 오래됐는데 왜?”

“어. 맞어. 그리고 거기 카페 생긴대.”

“도라이가… 어느 도라이가 거기에 카페를 연다는데? 와… 진짜 거긴 아니지. 누고? 아는 사람이가?”

이로써 그 자리에 카페를 연다는 것은 미치거나 미치도록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미정은 왠지 모를 호기심이 자꾸만 삐쳐 나왔다. 아무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에 여는 카페. 빨리 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출간

종이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870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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