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18화
“야, 그 카페 열었다며? 가 봤어?”
삼촌에게서 카페 오픈 소식을 들었는지, 수화기 너머로 현주의 흥분된 목소리가 느껴졌다.
“내가 거길 왜 가? 그리고 콩만 한 카페 하나 연 게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전화까지 해서 확인해?”
“야, 그 동네에서는 큰일이지. 그리고 궁금하잖아. 그런 낡은 건물을 인수해 카페를 연 남자. 뭔가 낭만적이지 않아?”
“낭만은 개뿔….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 같구만.”
“하긴… 삼촌이 개업 날 가 보셨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더래. 야, 그리고 그 카페 이름이 뭔 줄 알아? ‘삼랑진역 오막살이’란다. 하하! 진짜… 카페 이름 짓는 센스 하고는. 아무리 삼랑진역이 옆에 있어도 그렇지… 삼랑진역 찐 팬인가 보네. 그러니까 사람도 없지! 그리고 거기 주인이 부산에서 온 남자래. 삼촌 말로는 키도 엄청 크고… 아, 특히 눈꼬리가 축 처진 게 엄청 순해 보인다던데?”
미정은 순간 번개를 맞은 듯 동공이 확대되며 누워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어떻게 생겼다고? 부산 사람 맞아?”
“지금까지 뭐 들었어… 근데 특이한 게 부산 사람인데 사투리를 전혀 안 쓰더래. 신기하지? 하긴, 우리도 사투리를 고치긴 했지만 남자들은 잘 못 고치던데 말이야.”
“키는 한 어느 정도래??”
“삼촌 말로는 사촌 오빠랑 비슷하다고 했으니까… 한 185? 요거… 요거… 왜 갑자기 관심이실까? 흐흐. 생긴 거도 선하면서 단정하다고 하던데… 한번 가 보던지. 흐흐흐”
현주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미정은 머리를 감싸며 ‘뭐지? 뭐지?’를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설마… 그 사람이?’
현주의 설명을 듣자 잊고 있던 사람, 창화가 떠올랐다. 현주가 말한 외모, 그리고 부산 사람. 게다가 사투리를 쓰지 않는 부산사람이라면 왠지 창화일 거 같다는 아니, 확실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설마 삼랑진에 와본 적도 없는 사람이 카페를 열겠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정은 침대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 방을 이리저리 오가며 ‘맞나?’와‘에이, 아냐.’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날도 더운데 어데가노?”
“금방 올 거야!”
미정은 차를 몰고 삼랑진역 쪽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도 그녀는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며 긴가민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카페 근처에 도착하니 발걸음을 망설였다. 창화가 아니면 그만이지만 만약에 맞다면? 만약 창화라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정은 일단 먼발치에서 카페를 응시하고 있었다.
“와… 진짜 ‘삼랑진역 오막살이’네.”
카페 간판을 보고 현주가 했던 얘기가 사실임을 확인하며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카페 주인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입구를 응시했지만 도통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창가에는 커피머신이 놓여 있었고 창화는 그 뒤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커피머신에 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무슨 카페 주인이 옴짝달싹을 안 해….”
미정은 마치 잠복근무를 하듯 ‘삼랑진역 오막살이’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창화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에 땡볕을 맞으며 계속 ‘삼랑진역 오막살이’을 바라보고 있다가는 더위를 먹고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침내, 그녀는 ‘삼랑진역 오막살이’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몇 걸음도 채 안 되어 커피머신 앞에 도착했다. 창화는 여전히 누가 온 줄도 모른 채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저기… 커피 한 잔 주세요.”
“아! 예!”
창화는 손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자, 반가움에 책을‘탁!’ 덮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사람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쩌면 창화를 삼랑진으로 이끈 사람, 미정이었다.
“어? 진짜 창화 씨였네요! 설마, 설마… 했는데.”
창화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놀라요? 처음 보는 사람도 아닌데.”
“아… 그… 그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우리 동네에 이렇게 큰 사고를 쳐놓고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네? 사고… 요?”
“헤헤, 농담이에요. 세상도 좁고 서울도 좁다는데 이 동네는 오죽하겠어요? 이 카페가 요즘 우리 동네 실검 1위라고요.”
“정말… 요? 그런데 왜 손님이 없지… 전 홍보를 안 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아, 더운데 밖에 서 있지 말고 들어와요.”
그가 카페 문을 열어주며 손짓하자, 미정은 가볍게 눈인사하며 카페로 들어섰다.
“너무 작아서 구경할 건 없지만 잠시 보고 있어요. 시원한 커피 한 잔 내려줄게요.”
미정은 ‘삼랑진역 오막살이’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근데 창화 씨, 커피는 언제 배웠어요?”
“아, 얼마 안 됐어요. 그래서 커피 맛은 보장 못 해요. 하하…”
창화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만들어 와 미정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오랜만이에요.”
“어쩌다 여기에 카페를 열게 된 거예요?”
창화는 미정에게 카페를 열기까지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도 믿기 어려운 노인의 얘기는 빼고. 미정은 얘기를 듣는 중간중간에‘어머!’,‘진짜요?’와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그의 얘기를 신나게 듣고 있었다. 마치 기차에서 대화를 나눴던 그 순간이 오마주 되는 것 같았다.
“창화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나름 지르는 스타일이네요?”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런데 미정 씨는 제가 연 카페라고 알고 여기에 온 거예요?”
“아, 카페 이름이… 너무 특이하잖아요. 카페 이름을 들었을 때 딱 창화 씨가 떠올랐어요. 창화 씨가 삼랑진역의 존중을 얘기했었잖아요. 그런 철학 있지 않고서야 누가 카페 이름을 이렇게 짓겠어요?”
사실 현주의 창화 외모에 대한 묘사와 부산 사람이라는 것이 더 결정적이었지만 미정은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하하, 철학까진 아니에요. 그냥 그때 미정 씨랑 대화하면서 생각난 걸 막 뱉은 거예요.”
“뭐, 그래도 막 뱉은 말이 이렇게 제 기억에도 남았고… 여기 카페 간판으로도 남았네요.”
기차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대화는 여전히 유쾌했고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딱 적당한 대화였다.
“밥 묵을 때 다 됐는데 니 안 오나?”
미정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알았어. 금방 가. 창화 씨, 저 이만 가봐야겠어요. 엄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난리네요.”
“아, 예. 얼른 가 보세요.”
“그런데 창화 씨는 밥… 어떻게 먹어요?”
“아… 전 바로 위층이 집이라 간단하게 그냥 대충…”
“그렇구나… 아 참, 헤이즐넛 하나 가지고 갈게요. 엄마가 헤이즐넛 마니아시거든요. 그리고 아까 마셨던 제 커피랑 같이 계산해 주세요.”
“아, 아니에요. 오늘은 제가 대접할게요. 아직 커피 실력이 모자라서 돈 받기도 민망해요.”
“사장님, 이러시면 안 돼요. 아메리카노랑 헤이즐넛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커피 괜찮던데요? 전 나쁘지 않았어요.”
“정말요? 위안이 좀 되네요. 헤이즐넛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미정은 헤이즐넛을 받아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창화는 그녀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은 있다는 안도.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 어둠이 찾아와도 야경이 있다는 그것일지도 모른다.
제11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최종심 선정작
소설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출간
종이책: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870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