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탈 Aug 16. 2024

환갑이 넘어 영어를?

미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전재고개를 넘나들며 떠올린 한결같은 생각이 있다. 환갑이 넘어 구한 귀한 직장이니 이왕이면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보자.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니 뭐가 되었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보자. 그게 바로 영어회화 공부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대놓고 드러낼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영어회화라는 게 말하기와 듣기로 이루어지니 전혀 드러내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다. 하여, 내세운 명분이 '치매 예방'이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나이를 더할수록 기억력 감퇴는 숨길 수 없는 노릇이고, 이는 치매의 전조증상이라 하니 기억력을 향상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이상의 악화는 막아야겠다는 그럴듯한 명문을 내세웠다. 일면 진심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근 40여 년 만에 다시 하는 공부니 쉬울 리가 없다. 독해지는 수밖에 없다. 일상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퇴근 후에는 곧장 집으로 달려와 영어회화공부로 시간을 채웠다. 짝지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독려했다. 

공부의 연속성을 위해 근무시간에도 방법이 없을까 궁리 끝에 일명 짬짬이 공부를 시도했다. 항상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무전에 귀 기울여야 하기에 유튜브를 볼 수도 없고 책을 볼 수도 없다. 찾아낸 방법이 업무 중 잠깐씩 찾아오는 여유시간을 활용해 이어폰을 한쪽만 끼고 소리를 최소화해 반복해서 듣고 따라 했다. 혼자 중얼거리노라면 동료가 묘한 시선을 던질 때도 있지만, 미리 던져놓은 '치매 예방'이란 미끼로 위기를 넘긴다. 


공부 방법이야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집에서는 'Language Reacter'를 이용해 영화 대사를 프린트해 낯선 단어들을 익히고, 영화를 재생하면서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한다. 직장 내 짬짬이 공부는 부담이 덜한 내용으로 대체했다. 매일 새로운 내용을 집에서 초벌구이 한 후 직장에서는 짬짬이 시간을 활용해 이어폰으로 듣고 말하기를 반복하며 요리를 완성했다. 


지금까지 결과는 비교적 만족스럽다. 우직하게 반복하다 보니 웬만한 새로운 내용도 대충은 알아듣고 이해한다. 반복의 힘이리라. 무엇보다도 일터에서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언제부턴가 우리 루지체험장을 찾는 외국인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교육팀에서 일할 때는 사전 안내와 안전교육 정도는 영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론 가이드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영어회화 연습 겸 직접 하는 것을 선호한다. 운영팀에서 일할 때도 반갑게 맞아주고, 재미있었느냐 물어주고, 필요하면 사진도 찍어주고, 다시 찾아달라 인사를 던지면 효과 만점이다. 환한 미소와 따뜻한 인사말로 되돌아오면 은근한 보람과 자부심도 느껴진다.


또 한 가지 활용사례는 다소 유치하지만 통쾌한 게 있다. 교육팀에서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가끔은 다소 무례한 집단들을 발견한다. 허연 머리에 유니폼을 입고 땀 흘리는 모습이 초라해 보이는 까닭인지 필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약간은 불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환갑이 넘으면 이 정도는 동물적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싫은 표정을 지을 수도 없기에 이럴 땐 익힌 문장을 총동원해 영어로 떠들어댄다. 마지막 멘트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요."라고 우리말로 마무리한다. 신기하게도 이후 불쾌한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지 찾아볼 길이 없다. 소심하지만 통쾌한 복수다.


누구라도 나이 듦을 탓하지 말고 각자 의미 있는 일과 공부를 찾아 미쳐보시길 권한다. 설령 지나온 세월 중 단 한 번도 공부, 연애, 일에 미쳐본 경험이 없을지라도 괜찮다. 무언가에 미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족) 누구라도 짐작하듯 별 볼 일 없는 실력임을 시인하니 혹여라도 필자를 시험하지는 마시라. 필자 수준에 맞게 미친 듯 자족하며 살아갈 뿐이다.

이전 01화 너무하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