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탈 Sep 14. 2024

힘 좀 쓰세요!

여성들이여 힘을 숨기지 마시라.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에너지를 집중 발산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히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인격체로써 자신을 드러낼 때는 모든 에너지를 토해내지만, 애정이 개입되면 오히려 힘을 숨기는 경향이 뚜렷해 보인다.


루지체험장을 찾는 고객은 구성이 아주 다양하지만 단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녀가 섞여있다. 동성끼리 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안전교육을 하다 보면 재미난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교육 말미에 루지 조작법을 배우게 되는데, 무동력 썰매인 루지는 브레이크를 잡으려면 핸들을 자신의 몸 쪽으로 당겨야만 한다. 당연히 힘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괴력을 필요로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약간의 힘과 스피드를 요할 뿐이다. 솔직히 필자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여성이라도 누구나 쉽게 핸들을 당길 수 있다.


현장에서는 '스탑'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지만 루지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고자 할 때 브레이크를 잡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 시 필자가 아무리 용을 써봐도 남녀가 섞여있으면 여성의 경우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팀이거나 여성 단독일 때와 비교하면 실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성과 비슷하게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남성과 같이 있으면 갑자기 청순가련형의 여인으로 변신한다. 고전적인 여성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마음 이해는 한다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핸들을 자신의 몸 쪽으로 당기지 못하면 출발 자체가 불가하다. 2.4km나 되는 내리막 길을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내리 달릴 수는 없기에 난감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할 수 없이 필살기를 동원해 에너지를 뽑아낸다.

기본 멘트는 이렇다.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핸들을 몸 쪽으로 강하고 빠르게 당기세요. 여러분이 연애할 때 즐겨 사용하던 '밀당'을 하면 됩니다. 발로 면서 동시에 핸들을 기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여성분들은 예쁘게 당기면 당겨지지 않으니 자기 체중을 이길 만큼의 힘과 스피드로 당기세요."

애초에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특수 멘트를 사용한다.

"여성분 어제 과음하셨나요? 주변 남성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처럼 과격하게 하세요. 집에서 남편과 아이들 대하듯 힘 좀 쓰세요."

확실히 효과가 있다. 얼굴이 약간 상기되기도 하고 무안한 표정도 내비치지만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이곤 거뜬히 문제를 해결해 낸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탁월함이 분명하다. 힘을 써야 할 때와 장소, 시기를 구분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존중할 일이다. 21세기를 힘겹게 살아가는 남성들이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 여성심리를 이해 못 할 남성은 없으리라. 바라기는 루지체험장을 찾거든 힘 좀 써주시길 정중히 요청드린다.

이전 05화 즐거움은 모두의 몫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