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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May 17. 2023

마음이 흔들릴 때, 보이지 않는 선을 찾고 있습니다

봄비가 지나고 정말 봄이 왔을까라는 찰나의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곧바로 푸르름이 풍성한 여름이 급하게 다가온 기분이 든다. 나뭇가지는 저마다 싱싱함을 자랑하고, 길가의 꽃들은 자신의 어여쁨을 한껏 뽐내는 모습이 짧아진 소매 길이만큼 극단적으로 보였다. 어쩌면 새로운 계절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항상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선'을 찾아 다녔다.


1월, 1일 또는 월요일...


무의미한 경계를 굳이 들먹이면서 말이다.


의지가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마음 같으니라고...


그렇다고 그 순간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본격적으로 들이대지도 않는다.

마음 속 '때'를 마주하면서도 하기 싫다면서 항상 무너져 내린다. 이후의 죄책감은 또다른 모양의 후회와 함께 감당해야 한다.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백만번도 넘게 해 보았다.

작심삼일이 밥먹듯 이루어지다보니 이제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짓게 되어 버린다. 그나마 글쓰기는 약간의 틈새가 생기면 어디서든 끄적거릴 수 있다보니 이것만은 진정한 취미가 되었나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시작점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마음을 먹고 그 즉시 움직이면 그것이 출발점이기에 멈추지 않을 멘탈만 있다면 충분하다.



최근에 또 한번의 흔들리는 마음이 시작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 언제부터 시작 해보자고 다짐을 하려고 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시간을 가지고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정확하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연중에 어떤 이미지가 흐릿하기는 하나 선명하지 않다보니 줏대없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욕심은 많으나 실천이 되지 않는 잉여스러움'이라는 문구가 두뇌를  계속해서 잠식해가고 있다. 정확한 기준점이 없으니 당연히 목표에 따른 노선을 설정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아챘다. 어그러지고 뿌연 안개가 자욱하듯

혼란 상태가 지속되면서 조금씩 일상 또한 어그러져가고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하지만 나 혼자 느끼는 그 기분은 정말 별로다.


다시 되돌아오고 싶었다. 잃어버린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만들고 싶었다.

속에 있는 내용을 풀어내고 싶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 줄도 쓰지 못한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컴퓨터를 닫고 A4용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펜을 쥐고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나 지금 뭐하냐?'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머릿속이 너무 하얗다, 아니 얼룩덜룩 한 것인가?'

'선명하지 않음이 오히려 답답하다'


이내 별 쓰잘데없는 말들로 반 페이지가 채워졌다. 한참을 무의미한  잉크와 종이를 낭비하고나서야 내가 쓴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왜 그러고 있는지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정, 개인, 업무, 엄마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비빔밥처럼 한데 뒤엉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나 잘 비벼졌는지 더는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한 쪽 눈을 감고 모른척 하기에는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절로 잠도 제대로 못자고 생각은 넘쳐나고 손도 대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일단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복잡한 비빔밥들 사이에서 커다란 재료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본다.


멀티를 원하지만 그쪽으로는 재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번의 하나씩'원칙을 고수한 채 분류하고 처리해야 할 것이다. 연달아 몇 주를 제대로 잠도 못자다보니 멍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휘청거림을 단단하게 붙들어 줄 필요는 있다. 깜량도 안되는 대단한 일을 하고싶어 버둥거리다 벌어진 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나아가 보아야 겠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발행 후 몇 시간 있으면 흑역사로 변질될 지언정 한동안은 서두르지 않고 쓰고 정리하고 발견하는 반복을 계속해야겠다.


월요일, 1일과 같은 웃기지도 않는 기준점을 만들어 스스로 괴롭히는 건 그만해도 될 듯 싶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걸 찾기 보다는 그저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계속 하다보면 조금은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낼 수 있고 깨끗하게 정렬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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