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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May 22. 2023

익숙함이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자연스레 익숙한 것을 따라간다.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하는 관계는 사람이나 물건, 환경에 따지지 않고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신선함을 선호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익숙하지 않은 그 감정의 매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일상에서 주는 단조로움을 벗어나기에는 자극이 주는 쾌락만큼 좋은 것은 없다.


주말을 맞이하여 서재로 사용하던 방 하나를 청소했다.

그동안 자연스러움을 추구해 온다는 명목 하에 너저분했던 방청소를 등한시했던 곳이었다.

지난겨울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뜨끈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는 것이 좋았다. 자연스레 책상이 아닌 바닥에 상을 깔고 생활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하다 허리에서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 바로 누워 버리는 장점이 매우 컸다. 맨바닥에 누우면 차디찬 공기와 함께 딱딱한 바닥에 결리니 도톰한 깔개를 깔았다. 그러니 이번에는 누워서 핸드폰을 하게 되었고, 목이 결리니 작은 베개가 등장했다. 평소 무릎담요로 사용하던 아이는 어느새 포근한 작은 이불이 되어가고 있었다.


분명 서재라고 이름을 불렸으나 이내 유사시 버틸 수 있는 안락한 잠자리가 되었으며, 한 번 누워서 책을 읽다 보면 다시 일어서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더 필요했으므로 자동으로 앉은자리 주변에 책이 한 권, 두 권 쌓여가기 시작했다.


'익숙함은 여기까지!'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야심 차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하지만 엉덩이와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부터 그러한 다짐은 인어공주가 변해버린 물거품과 다를 바 없어진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 봄이 가고, 여름을 앞두게 되었다.


나 자신이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부여잡고 계속 애를 쓰며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길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책으로 사방이 꽉 막혀있어 시야 자체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답답하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입으로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고 말했으면서 정작 나는 빽빽한 나무에 갇혀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일요일 오후.

여전히 내 앞에 산재되어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한쪽 눈을 다부지게 감아 버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 홀로 방 안에 틀어박혀 청소를 시작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놓는 임시방편의 눈가림이 아닌 비움이 함께하는 고된 작업에 두 팔 걷어 올렸다.


커다란 분리수거용 투명 비닐과 종이를 모아버릴 큰 쇼핑백, 그리고 20리터 종량제 봉투.

모든 것을 버릴 심산으로 각 잡고 들이댄 비움의 시간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기도 했다. 평소 쟁이는 습관이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다.


'지금 필요해~'

'언젠가 사용해야 해~'

'이건 편리함을 도와줄 거야~'


다양한 핑계들로 하나둘씩 모이게 된 물건들은 뭉텅이가 되었다. 두툼한 종이 뭉치들을 하나하나 선별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곤 가감 없이 비우기 통으로 직행했다. 분명 필요에 의해 발급받았던 재직증명서와 등본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책을 읽는 공간에 스티커와 아이 고무줄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지... 각자의 사유에 대해서는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익숙함을 빙자한 게으름이 빚어낸 현실이었다. 여전히 한번 더 생각을 해 볼까?라는 흔들림이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가차 없이 3개월 이상 생각도 사용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이런 게 있었어?'라며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은 더 잘 사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시작한 대장정의 막은 장장 4시간.


큰 맘먹고 시작한 대작업은 청소기와 물걸레로 마무리가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혼자만의 격리 생활을 해제하고 남편에게 보여 주었더니 연신 감탄을 내지른다.


"어디 이사 가세요?"


놀라움을 함축하는 단 한마디에 내 어깨가 자동으로 승천한다.

나조차도 이 공간이 이렇게 넓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익숙함에 하나둘씩 늘어갔던 물건들은 사람이 사는 공간에 본인들이 주인인 양 들어앉기 시작했다. 불청객이라고 표현하기는 다소 미안했다. 편리함을 위해 나의 손이 닿는 곳에 두기 시작한 건 다른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를 부여하고 배정받지 못한 것들은 모두 비우기를 했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이렇게 해서 얻어진 공간은 단순히 깨끗함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앉게 된 비어있는 책상은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켜주기 충분했고, 멈추지 않을 용기를 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가족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늘 장난감이 없다며 매번 새로 사달라던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방바닥에 앉아 좋아하는 토끼인형에게 책을 읽어주며 알콩달콩 하는 모습은 평화를 챙겨 주었다.


나조차 할 수 없다고 손 놓았던 과업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별 볼 일 없는 방정리는 그 과정에서 어지러웠던 생각을 차곡차곡 쌓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천성이 게으른 나이다. 하지만 익숙함이 주는 편리함을 살짝 내려놓으니 다이어리에 적어놓았던 여러 가지의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나가게 된다.


익숙함은 사람을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깨끗한 공간 하나만으로 잃은 것은 가득 채워진 20리터짜리 종량제 봉투와 다양한 분리수거들.

하지만 그것보다 얻은 것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건이 아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4시간을 잃었지만 손에서 놓아버린 각종 쓰레기들만큼 혼란함이 정렬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된다. 무조건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보다는 때로 잠시 쉬면서 나를 편협하게 만드는 익숙함을 청소하는 것에 대한 얻음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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