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몇 번의 영원을 약속할게

유다빈밴드, <CODA> 앨범

by 흰새결

유난히 날씨가 좋다는 걸 빼면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먹고 싶었고 샌드위치를 포장해 공원으로 향했다. 발 빠른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벤치 하나가 비어 있기에 나는 소소한 행운을 자축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정오에 발매된 유다빈밴드의 정규 2집 <CODA>를 듣기 위해서였다.


샌드위치를 다 먹은 건 그로부터 15분 11초 후, 6번째 트랙인 '모래성'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진심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우는 직장인보다 당혹스러운 건 샌드위치를 삼키며 우는 직장인 뿐일 테니 말이다. 거짓말처럼 뚝뚝 떨어지던 눈물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 끝날 무렵 잦아들었다.


한겨울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본 것처럼, 도저히 내 힘으로 지켜내지 못할 무언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주 연약하고 순수하며 깨지기 쉬운 것. 두려움으로 비뚤어진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영원을 약속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었다. 숱한 상처를 모아 세워둔 모래성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다시 믿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거냐고.




<CODA> 앨범은 인터미션인 ‘모래성‘을 기준으로 그전까지는 불특정 다수인 '우리'를, 이후로는 유다빈밴드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중 사랑과 영원은 핵심적인 테마다.


https://youtu.be/ebVwErhTnvE?si=KUKWJZucOynEBquH


1분 남짓한 인트로는 말이 빠르게 뒤섞이며 콜라주를 이룬다. 알아듣기 어렵게 연출되었지만 한 문장은 또렷이 박혀든다.


어떤공포를느꼈습니다분명히내위에있는데손도뻗을수없었습니다그래서손가락이다찢어지도록힘껏울었습니다그것은옆방에서귀를잘만붙여듣는다면한소절은말할수있을것이라고온동네메아리가다시돌아오기를기다리며벽에연신일기장을썼습니다부디눈물을섞지마세요

나는 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수록곡 'Love Song'와 '커튼콜'의 가사와 연결 지어 해석해보려 한다.


https://youtu.be/iBHn_l5xJKc?si=J4Um5F5dj7DWr3zg


사랑은 절대 지지 않기에 우리의 밤은 영원할 거야


https://youtu.be/BNtUBYhAK5A?si=4qx2bALKud4Sxqoc


내일이 올까 오늘이 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지워지지 않을 사랑이 있잖아


문장 구조에서 '나'와 '사랑'은 동일한 위치에 있으며, '지지 않다'는 말은 ‘끝나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함께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나는 사랑으로서 존재하는 한 영원하다'는 명제가 완성된다.


https://youtu.be/JRCVKinnYrU?si=mH_ufDsGOfsfZ8a2


여기서 '영원'은 유한함을 겪어본 적 없기에 내뱉는 말이 아니다. 1집에서도 명확히 보이지만, 유다빈밴드는 끝을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에 가깝다.


2집에서 <모래성>은 사랑과 영원이 가진 필연적 한계를 인정하며 잔잔한 슬픔을 표현한다.


사랑은 두려울 만큼 덧없고
그럼에도 나를 이 파도 앞에 세우네
이별은 지겨울 만큼 많았고
그럼에도 나를 이 파도 앞에 세우네
나는 기울어져


그저 인간일 뿐인 '나'는 저항할 수 없는 이별을 겪어내야만 한다. 마치 모래성이 자신을 부서뜨릴 파도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럼에도 다시 한번 입 밖으로 내는 약속이 있다.


겁 없이도 너를 혼자 두지 않으려
너를 안으러 갈래


이 단순한 의지가 '나'를 끝내 지지 않는 사랑으로 만들어 영원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




처음엔 납득할 수 없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마치 진리처럼 여겨진 문장이 있었다.


어른에게 영원이라는 건 단지 아주 오랫동안을 의미하기도 한단다.


마침내 나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마치 트릭이 밝혀진 마술을 보는 것처럼 즐겁지만 냉소적인 마음이 쌓여갔다. 어른이라면 겉치레와 순간의 진심에 감사하며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CODA>를 들으며 눈물이 흘렀던 건 그럼에도 영원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단지 어린 시절의 환상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었다. 영원은 말해질 때만 비로소 영원이 된다. 단 한 명이라도 믿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깨지지 않는 약속이 된다. 마치 이어지는 횃불처럼, 매번 새롭게 밀려드는 파도처럼.


그러니 사랑이 되어 영원을 말하던 당신이 문득 두려워진다면 이번엔 내가 영원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한다. 다시 몇 번의 영원을.


https://youtu.be/MQ7Z2VJYJVg?si=5KaowxfYwedo4WUQ


keyword
이전 08화후회를 후회하지 않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