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예린, <시간의 다리(Lily)>
선생님, 고요하게 눈이 내리는 연휴입니다. 작년 6월부터 매주 표시되었던 심리상담 일정이 달력에 비어 있습니다. 한동안 선생님을 뵙지 못한다는 말에 의식하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 저희 둘 다 당황했죠. 무슨 감정인지 물어보셨을 땐 슬프다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현듯 눈물로 넘친 감정을 모조리 슬픔이라 정의하는 건 오랜 습관입니다. 마음속에 뒤섞여 번져가는 감정들은 익숙한 색이 아닌 탓에 머리를 어지럽게 했으니까요. 숱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꺼내 쓰면서도 그런 감정 안에서는 목소리를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장황한 말 대신 노래를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나의 곡에서 가사와 멜로디가 상반된 감정을 드러내면 그 간극에 매혹되어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왜 마음을 끌었는지 설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처럼, 그러다 문득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발견하곤 합니다.
https://youtu.be/l3nxrlDvj2M?si=MOWB3vJEws7qZqIh
새벽안개 낀 길을 걸으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주변 풍경이 생겨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예린의 <시간의 다리>는 마치 그렇게 시작됩니다.
시간의 다리를 건너 새벽을 지나
영원의 불빛 뒤 너를 찾아낼게
한 방울 물이 떨어지는 듯한 피아노 여운 위로 가사가 또렷한 존재감을 갖고 나아갑니다. 차분한 어조로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정을 묘사합니다. 가야 하는 길은 망자를 구하러 가는 신화 속 오르페우스처럼 터무니없지만, 확고한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듯 보입니다.
만약 이어지는 파트가 없었다면 이 노래는 제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요?
흐릿해진 내 두 눈이 밤안개를 따라 흉내를 내
쉴 틈도 없이 뺨을 적시는
그리움에 무너지는 날 못 본체 해줘
아직 그에게 닿지 못한 부탁은 막막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이 여정이 무의미할 수 있다는 걸 어느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숨을 고른 화자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지옥 같던 날들도 이겨낼 수 있게 된 건
오롯이 나의 밤을 밝힌 그대라는 별
처음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땐 이 노래에 담긴 마음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몸과 정신이 소모되는 일을 겪으며 많이 약해져 있었으니까요.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은 힘없는 어리석음이었습니다. 타인의 잣대를 그대로 가져와 이 길의 끝에 만날 수 있는 건 없다고 절망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선물로 골랐던 튤립은 시들었을까요. 그럼에도 제가 꽃을 드렸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겠죠. 반년의 시간 동안 선생님이 함께 찾아주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회기에 흘린 눈물은 상실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토록 온전한 이별을 맞을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보다 용기로 더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벅찬 상황은 여전히 중심을 흔들어 놓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려 합니다. 어느 틈에 또다시 잊어버리게 된다면 선생님을 찾아뵐게요.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요. 오직 그것 하나만 언제까지나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