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너마저, <그 모든 진짜같던 거짓말>
예술을 '거짓말'이라 부르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창작자와 소통하지만, 그 대화는 오류투성이다. 심지어 가장 명료한 예술인 글마저도 온전히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작품 너머에는 분명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외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 목소리가 닿았다면 마음은 움직인다. 그렇게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다.
그러나 전제를 다시 잡아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간혹 작품 너머에,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진화한 생성형 AI는 완성물만으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정교해졌다. 특히 글은 몇 번의 프롬프트(명령어) 입력만으로 프로 작가 수준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 경우 사용자에게 저작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AI 사용을 어떻게 구별해 낼 것인가다.
이 글을 작성하며 오랜 시간 고민해 보았지만, 현재로서는 구분이 어렵다는 결론뿐이었다. 그렇다면 개개인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작에 AI를 사용했을 경우 왜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단언컨대 우리가 잃어버릴 것은 예술의 본질에 가까이 붙어있다. 바로 '진짜 같은 거짓말'에서 '진짜'를 담당하는 부분이다.
보통 깊은 감동을 받은 작품이 AI로 만들어졌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작품을 해석하는 맥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비유하면 손으로 짠 목도리를 선물 받았는데, 어느 날 동일한 상품을 판매하는 걸 본 기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처럼 완성된 작품이라 할지라도 창작자는 작품 해석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AI 창작이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감상자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작품은 이에 맞는 맥락에서 해석된다. 우리는 자연을 보고도 감동한다. 이때는 은연중에 창작자가 없다는 맥락에서 감상한다. 그렇기에 의도가 없는 순수한 자연법칙과 우연성에 경외감을 느낀다. 사실상 반복적인 창작과 감상을 축적하며 '맥락'을 형성하는 일이 AI 창작 분야에 주어진 과제이다.
결국 창작자가 AI 사용을 숨기는 이유는, 인간이 창작했다는 맥락에서 작품이 해석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껏 많은 아티스트가 쌓아온 업적을 이용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래 저작권은 특정 창작자에게만 해당되는 권리지만 AI 시대에는 새로운 개념이 추가되어야 한다. 바로 순수 창작을 하는 아티스트 전체에게 주어지는 저작권이다. 이는 법률적인 효력은 없지만 윤리적인 타당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만일 이러한 명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창작자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던 맥락이 점차 흐려지게 된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들여야 완성할 수 있던 작품을 AI는 단 1분 만에 생성할 수 있다. 더 이상 예술은 감동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창작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우연일 수 있으며,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듣는 사람이 없어지면 창작자는 원동력을 잃어버린다. 대체 무엇을 위해 그 고된 작업을 계속해야 할까. 어지러운 내면을 파헤치고 정제하며 깎아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어차피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목소리라면 예술성 대신 상업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AI 사용은 예술의 상품화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순수 창작을 하는 아티스트가 점차 줄어들면 맥락은 더욱 빠르게 사라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예술을 바다에 비유한다면, 진정성은 마치 크릴새우와 같다. 크릴새우가 극지방 바다 생태계의 시작점인 것처럼, 모든 감동은 바로 그 진정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AI 창작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당장은 아티스트들이 쌓아온 맥락을 이용할 수 있지만, 독자적인 맥락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작품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 지체 현상이 벌어지는 현 시기에 윤리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는 잃어버린 후엔 회복할 방법조차 찾기 힘든 귀중한 가치이다.
끝으로 모든 창작자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 무분별하게 AI가 사용되는 현실에 낙담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껏 해온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엔 여전히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부디 '그 모든 진짜 같던 거짓말'을 계속해주길 바란다. 우리가 말 없는 대화를 나누던, 한없이 눈부시던 순간들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https://youtu.be/kGK_0e0SqZY?si=lx8tzu256FjfgB7b
누군가 내게 말했지
그때 네가 했던 건 이젠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나는 그저 장난 같은 일에
빠져있던 걸까
그래서 모두 잊어버린다면
그 모든 진짜같던 거짓말을 잊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