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어딘가에 ‘쓰레기 옷 산’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선진국에서 ‘의류 기부’라는 명목으로 쏟아낸 수십, 수백 톤의 옷들이 사실상 쓰레기가 되었고, 그게 쌓이고 쌓여 위성에서 보일 만큼 거대한 산을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뉴스를 보면서 나 역시 일말의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과거 회사원 시절,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즌마다 SPA 브랜드에서 몇십 만원씩 카드를 긁어대던 나였으니까. 유행이 지나면 안 입고, 버리긴 아까워 옷장에 처박아두기 일쑤라 옷장은 늘 터져 나갔지만 정작 입을만한 옷은 없었다. 내가 스티브 잡스라면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도 ‘의사결정의 피로를 줄인 합리적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닌지라 ‘그냥 옷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테니까. 결국 패션도, 소비도, 타인의 시선에 매달린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앤디의 집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그녀가 가진 알록달록 화려한 옷들이었다. 그녀의 옷걸이엔 팝스타의 콘서트 투어 의상 못지않은 채도 높은 색상과 패턴의 옷들이 무지개처럼 걸려 있었고, 그 다채로운 옷들이 항상 나의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이런 독특한 옷은 다 어디서 사는 걸까 궁금하던 어느 날 앤디가 나에게 말했다.
“같이 옵숍(op-shop) 갈래요?”
옵숍?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알고 보니 옵숍은 ‘Opportunity shop’의 줄임말로서 중고 상점을 뜻하는 것이었다. 호주에서는 중고 상점이 브랜드 프랜차이즈까지 이룰 정도로 흔하고, 실제로 많은 현지인들이 옵숍에서 의류뿐 아니라 생활용품, 도서 등을 구입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동묘 구제시장 같은 곳이 있지만, 그렇게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다. 게다가 ‘멋진 아이템’을 건지기란 쉽지 않고, 깔끔한 새 옷을 선호하는 분위기 탓에 중고 옷을 사 입는 건 드물다. 나 역시 한국에선 중고 상점에서 옷을 사 본 적도 없고, 사볼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때문에 옵숍에 가자는 앤디의 제안에 ‘중고 옷이 괜찮을까?’라는 의구심이 앞섰다.
사우스포트에 위치한 중고 상점 거리에 들어섰다. 옵숍 안엔 무난한 옷부터 실험적인 옷까지 수많은 옷들이 아이템별, 사이즈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옷은 도대체 누가 살까...”
개성 넘치는 의상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앤디가 나를 불렀다.
“지-! 이것 좀 봐!”
앤디는 핫핑크 색상에 커다란 술이 달린, 밸리 댄서의 의상을 연상케 하는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환한 웃음과 함께 몸을 흔들었고, 그녀의 상체 움직임에 따라 비키니의 술도 현란하게 춤추고 있었다. ‘이런 옷’은 앤디 같은 사람을 위한 옷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똑같은 스타일의 사람을 한 칸에서 3명은 찾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핫핑크 비키니를 구매하며 앤디는 나를 위한 의상도 골라주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나는 앤디가 골라준 옷을 하나하나 입어보았다. 여긴 비버리힐즈의 백화점이 아니라 티셔츠 하나에 3-4달러 하는 옵숍이었지만. 앤디가 골라준 옷은 평소의 나의 취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꽤나 맘에 들었다. 맨날 뻔하게 사 왔던 옷들에서 벗어난 도전이었다. 결국 나는 앤디가 추천한 옷을 비롯하여 한 보따리의 쇼핑을 마쳤다. 그리고 그 가격은 평소 분기별로 한 아름 사던 옷들의 1/10 밖에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양손에 가득 쇼핑 봉투를 들고 있던 나는 괜히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이 기분은 가격표를 안 보고 아무거나 집어도 만 원도 안 나오는 다이소 쇼핑을 한 뒤 망설임 없이 결제하던 그때의 짜릿함과 견줄 만했다. 그 후로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나는 자연스레 옵숍부터 찾았다. 입지 않는 옷은 바로 가져다주며 옷을 순환시켜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 옷만이 새로운 기분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군가 버린 옷 한 벌이 오래된 나를 벗겨내고 새로운 나를 꺼내주기도 한다. 결국 옷의 가치는 값비싼 쇼핑백에 담길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를 색다르게 해 줄 때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내 손에 들어온 낡은 옷들은 나를 조금 더 가뿐하게, 조금 더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버려진 것 속에서 발견하는 가치야말로 어쩌면 ‘진짜 멋’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