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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by 말랭자매

장마가 지겹게도 끝나지 않는 여름이었다. 비는 끊임없이 내렸고, 잔디를 보내주러 가는 길에도 전조등과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여야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렸다.


마음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후의 첫 장례식이었다. 그마저도 우리가 예약한 시간보다 직원이 늦게 와서 잔디에게서 더 이상 잔디가 아닌 냄새가 날까 봐 차 안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에어컨을 켜고 있었다.

잔디를 보내줄 상자를 고르고 잔디를 닦는 것을 지켜보고 잔디를 정말 보내줄 시간이 왔다.

남자 친구랑 나는 잔디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서 울어도 비 오는 소리에 묻혀서 다행이었다.

유리 한 칸 뒤에서 잔디가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잔디가 가루가 되어 나올 때까지 그 앞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그동안의 잔디의 추억을 공유했다.


우리 그때 카페 운동장에서 세 시간을 뛰어도 잔디 지치지도 않았잖아.

잔디 우다다다 하는 거 진짜 귀여웠지.

나 흔들 다리 건널 때 무서워하니까 잔디가 괜찮다는 듯이 뒤돌아 보면서 나 걱정해 준거 알지?

응, 잔디가 널 제일 좋아했었으니까.

그게 마지막 여행일 줄은 몰랐네.

잔디 머리에 모자 같은 거 쓰는 거 진짜 싫어했는데.

우리 사진 찍을 때 사진관에서 엄청 웃었지.

잔디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 속에 저장된 우리의 행복한 모습들에 위로가 되었다. 그 추억에서만큼은 우리는 서로가 있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

잔디는 가루가 되어 내 품에 안겼다. 난 잔디를 집에 오는 차 안에서 꼭 안고 있었고 집에 도착해 늘 잔디가 누워있던 자리에 놓았다.






이제는 정말 나 혼자였다. 더 이상 외출할 때 불을 켜놓을 필요도, 잔디가 불안해할까 봐 티비를 켜놓을 일도 없었다. 더 이상 강아지 관련된 모든 것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즐겨보던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도 눈물이 나와서 티비를 켤 수가 없었다. 동네를 돌아다닐 때도 잔디의 안부를 물을까 봐 무서웠다.


모자가 싫은 잔디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나의 하루에 빈 시간이 있으면 잔디가 생각이 나서 살 수가 없었다.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과외도 구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다. 저녁 시간이 비는 날이면 남자 친구가 일하는 곳 근처에서 남자 친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집에 왔다.


보호소 봉사활동도 더욱 열심히 했다. 버스로 한 시간,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논 위에 뜬금없이 서 있는 비닐하우스 보호소에 사람에게 상처받고도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여름 비닐하우스 안의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아이들 홍보 사진까지 찍으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잠시 동안은 눈물이 안 났다. 가끔가다 잔디를 닮은 아이가 있어 잔디가 생각이 나면, 그 아이에게 정을 붙이며 아이들이 좋은 가정으로 입양 가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나에게 휴식이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시간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쉴 때는 그 귀한 시간을 그냥 흘러가도록 사치하는 것이 내가 쉬는 방식이었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손도 눈도 움직이지 않고 쉬는 것을 즐겼었는데, 이젠 그런 시간이 있으면 괴로웠다. 슬픔이 나를 파고들어서 한시도 멈춰있질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손을 움직이려고 뜬금없는 양모펠트 인형이라는 것까지 만들었다.



아무 생각 안 하는데 최고의 방법이었다. 바늘로 끊임없이 양모를 찔러서 둥글게 얼굴 모양을 만들고 귀도 만들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바늘에 찔려서 손가락에 피가 나기 때문에 이 인형을 만드는데만 집중해야 했다.


나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내 몸이 힘들어서 지쳐 잠들기를 바랐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했다. 그렇게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괴롭혔는데, 단 한 가지 멈춘 것이 있었다.

일기장.

내 일기장은 그날 이후로 멈췄다.

일기장을 열면 그날의 슬픔이 밀려올까 봐 무서웠다.

잔디가 간 후의 일기는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몰랐다.



잔디야, 남겨진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 네가 떠나고 정말 무서운 것은 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었나 봐.

꿈에라도 나와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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