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잔디를 떠올리고 싶을 때 잔디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이 싫어져서 점점 잔디 이야기를 안 하게 되었다. 그래도 잔디가 그리울 때는 잔디가 아팠을 때 도움받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락날락했다. 거기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에 맞춰 강아지 약을 챙겨 먹이고, 음수량을 기록하고, 검사를 받고 올 때마다 심장이 철렁해서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우리에겐 당연한 간병 과정과 아이를 보낸 후의 슬픈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듯 말하면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비수로 돌아올 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떠난 아이에게 매일 편지를 쓰기도 하고, 아이를 마음껏 그리워하고, 실컷 슬퍼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도 배변패드를 버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곳에 글을 남겼었다. 사람들은 아이의 흔적이니 당연히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내 마음을 토닥여 줬다.
질병 경과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잔디가 아팠을 때도 지방이 적은 음식 등을 찾는데 도움을 받았고, 잔디를 떠나보내면서도 무엇을 해야 후회가 가장 적게 남을 지에 대해서도 이 분들의 경험에서 우러난 도움을 받았다. 털을 잘라놓는다거나, 발바닥 남기기 등 모두 이곳에서 도움을 받은 것이다.
잔디가 정말 그리워서 잔디를 닮은 것이라도 두려고, 인형에 대한 정보도 얻어서 인형도 주문했다.
인형을 주문하다가 알게 된 양모펠트의 세계로 입문해서 미친 듯이 양모펠트 인형도 만들게 된 것이었다.
이곳엔 정말 따뜻한 분들이 많다. 아이를 보내고 힘들었을 텐데도 아이가 남기고 간 물건을 나눔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 나도 이곳에서 저지방 사료를 나눔 하는 분께 잔디 사료를 나눔 받으려 했었는데, 그날 딱 잔디가 떠나서 울면서 아이가 지금 떠나서 다른 분께 드리는 게 좋겠다고 전달하고 서로 울었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나눠주시는 분도 많아서, 잔디를 그린 그림을 나눔 받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나답지 않은 일을 참 많이 했구나 싶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냥 나에겐 온통 까만 세상이었다. 텅 빈 마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인형으로, 그림으로 잔디를 보내주려는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49재도 챙겨주길래 우리 집은 기독교지만(정확히는 어머니가) 이것도 챙겨야겠다 싶었다. 그날에는 잔디 물건들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잔디가 없는 49일 동안 나는 잔디를 사무치게 그리워했고, 그리워해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들이었다. 49일 정도 되니 정말 이제는 잔디에게 잘 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품을 소각하는 곳에 가서 내가 잔디를 기억하기 위해 간직해야 할 물건은 남기고, 잔디가 좋아하던 간식과, 배변패드, 장난감을 태워서 보내주었다.
그곳에서는 리드줄 없이 마음껏 산책할 수 있을 테니 이건 엄마가 갖고 있을게. 네가 마지막 입고 있던 옷, 마지막으로 누워있던 자리에서 네 냄새가 나서 냄새라도 간직하려고 지퍼백에 넣어놨어. 그 냄새가 날아갈까 봐 열어보지도 못하겠어. 내 첫 강아지 정잔디. 너랑 했던 모든 것들이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소중했었어. 이제 정말 잔디는 내 기억 속에만 있겠구나.
잔디야, 잘 가.
그날 밤, 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잔디가 나왔다. 나는 꿈에서 잔디랑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 핵인싸 잔디가 친구를 발견하고 친구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런 잔디에게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잔디가 엄마, 나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하더니 웃으며 멀리 뛰어갔다. 나는 그런 잔디를 잡을 수 없었다.
꿈에서 깬 나는 울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해졌고, 이 날 이후 알람이 날 깨울 때까지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