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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전화하기

by 말랭자매

잔디를 보낸 후 나는 잔디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더 이상 곁에 없는 잔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동네 과일 가게 사장님께 직접 잔디의 소식을 전하고, 간식 가게 사장님께도 전화를 했다. 잔디를 처음 만나게 해 준 봉사자분께도 전화를 했다. 봉사자분은 어미와 잔디의 형제자매들이 보호소에 함께 입소했던 것, 형제자매들 중 몇 마리가 죽고 잔디랑 다른 자매만 남고, 그 자매는 현재 부산에 입양가 있다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조금만 더 누리고 가지.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소풍을 갔을까요. 그동안 잔디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잔디를 만나게 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다고, 잔디랑 함께한 13개월이 이 시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될 정도로 행복했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울음이 날 것 같아 짧은 감사인사 후 전화를 끊었다.



잔디가 간 후 내가 좋은 친구들을 뒀다는 것을 톡톡히 느꼈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언니라고 해 이제

어떤 친구는 마음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친구야,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나의 사랑으로 인해 잔디가 그동안 행복했을 것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잔디가 나의 사랑을 알아줬을 것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


어떤 친구는 잔디 소식을 듣자마자 나랑 시간을 맞추더니 이 먼 곳까지 내려왔다.

친구는 날 보자마자 말랐다고 걱정하며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수다도 떨었다. 누군가에겐 내가 하소연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어서 잔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는데, 친구들은 실컷 그리워하고 실컷 슬퍼하라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친구야, 네가 우리 집에서 같이 자는 동안은 나 정말로 안 울었다. 밤에 자기 전에만 조금 울었어. 이제 이렇게 울지 않는 날들로 하루하루 채워갈게. 한달음에 달려와줘서 정말 고마워.


어떤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줬다. 호캉스를 하며 밤새 수다 떨기도 하고 낮엔 데이트도 함께 했다. 몇 달이 지나도 슬픔이 가시지 않고, 잔디 얘기를 꺼내며 뜬금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는데 친구는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잔디가 너의 첫사랑이었구나."

친구가 말해줘서 그때 알았다. 내가 아닌 존재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었고, 그 존재가 잔디였다는 것을. 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잔디. 나는 아직 너를 완전히 보내지 못했다. 아직 그리워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공감하며 아파해줬다. 내가 아직 잔디가 가기 전날 쉬야한 배변 패드를 못 버렸다고 하자,

장난스럽게 "야, 그건 좀."이라고 하는 바람에 같이 울다가 같이 빵 터졌다.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함께 추억할 사람이 있어서 잔디 이야기를 마음 한편에 간직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생각날 때 언제든 꺼내서 울며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나의 소중한 이야기로 간직할 것이다.

나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이 일을 버텨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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