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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에게

by 말랭자매

잔디야,

지금은 네가 떠난지 3년 정도 지났어.

난 너에게 이런말 하기 미안하지만, 조금은 괜찮아졌어.

올해 여름도 당연히 널 생각했고 향초도 만들며 널 그리워했지만, 엉엉 울지는 않았어.


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두려워.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 방법은 어땠을까. 그 순간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늘 이런 죄책감들에 시달리고,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 위해 너가 남긴 물건쪼가리들에 의지하면서 널 기억하려고 애쓰지만, 매일매일 추억은 흩어지는 것만 같아.


너의 모습이 공기 중으로 흩어지려고 할 때 눈을 감고 너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 네가 걷는 모습, 네가 산책할 때 귀를 펄럭이던 모습. 하지만 떠오르는 건 그 순간 뿐이고, 넌 그냥 막연하게 까만 코로 남아 있어. 비가 오면 그리움이 나를 찌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까지만 널 그리워하도록 허락하고, 잠시 그 감정을 멈춰둔채로 일상으로 돌아가곤 해.


난 너와 함께 걷던 산책길을 걸으면서 슬픔을 견디는 법을 배웠고, 가끔은 이렇게 익숙해지는게 무섭기도 해. 마치 널 잃는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도 네 사진을 보면서 눈물이 나는 걸 보니 나는 이 여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이 여름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거야. 끔찍해 보이더라도 겪어 내야만 하는, 그마저도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그런 너와의 여름의 기억들이니까.


이 계절에선 누군가의 '내가 네 곁에 있어. 언제든 내게 기대도 돼.'라는 따뜻한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더라. 혼자서 온전히 슬픔을 견뎌야 하더라고.




나는 그 기억 속에서 너와 산책을 할 거야.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서, 그 석양 속에서.

넌 긴 다리로 잘 가다가도 내가 잘 오고 있는지 확인하느라 가끔씩 뒤를 돌아보고,

우린 눈이 마주치며 서로가 있음에 감사해.


이 기억만큼은 희미해지지 않길.


내 기억 한 편에 너만은 사라지지 않길.

우리 다시 만나,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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