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뇨미 Sep 04. 2022

동물복지: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지도록

 '동물복지'라는 단어는 첫 대학교에서 필수 교양으로 들어야 했던 '생명윤리'에 관한 수업에서 처음 접했다. A4 용지보다 작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알만 낳다 죽어가는 닭들, 공장식 사육으로 길러지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소와 돼지들을 다큐멘터리로 보며 우리가 먹는 것들의 실상을 알고 충격을 받았었다. 동물들이 말을 하지 못해서 어느 정도의 고통을 받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가 고통을 받을 때 내는 소리나 표정을 다른 종들도 비슷하게 소리를 내고, 표정을 짓는 것을 통해 그들의 고통도 유추를 할 수 있다. 닭장에서 스트레스 받아서 자신의 털을 뽑아대는 닭들을 보며 그들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느끼지는 못해도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치듯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왔었는데, 거의 10년이 지나 나는 두 번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과 특성에 맞게 '동물복지 동아리'라는 동아리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가입으로 이어졌고, 이곳에선 여러 동물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은 역시 개, 고양이였다. 동아리 활동 덕에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기견들은 늙거나 병들어서 보호자가 버린 줄 알았는데, 보호소에 가면 정말 예쁘고 어린 강아지들이 많다. 키우다 질려서 버리기도 하고, 시골에선 강아지를 중성화하지 않아 계속 새끼를 낳게 되고 무작정 못 키우겠다며 아무 데나 박스채로 버려두기도 한다.


 매일 보호소에 입소되는 수많은 강아지,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 10일 공고 뒤 행해지는 안락사도 새로 알게 된 마음 아픈 사실이지만, 개농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강아지를 보며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미워질 정도였다. 소위 개장수에 팔리는 강아지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솜사탕 같다며 귀여워하는 포메라니안, 몰티즈 등도 뜬장에서 고통스럽게 평생 새끼 낳는 기계로 살다 죽어가는 어미 강아지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오로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뜬장에서 사는 강아지들은 평생 땅을 디뎌보지도 못하고, 온전하게 발 디딜 곳 없이 딱딱한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소변과 대변은 뜬장의 바닥으로 떨어지게 뒀으니 그 더러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너 혼자 관심 갖는다고 세상이 바뀌어?'


 동물복지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나는 누구더러 알아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롯이 내가 보고 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당당하고 싶다.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이 나타나서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보호소에 들어오는 유기견들을 보면 다시 힘이 쭉 빠진다. 수많은 SNS에 올라오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볼 때면 허탈하기도 하다. 그저 아기 꿈틀이 일 때 귀여운 모습을 보며 정작 그 뒤에 고통스러운 어미는 모르는 사람들. 가끔 화가 나기도 했다.


 그중엔 우리 어머니도 포함이 됐다. 우리 어머니는 동물에 관심이 없다가 내가 수의대에 입학하자 관심이 생기셨는지 자꾸 '이 강아지 귀엽지 않니? 얘도 귀엽지 않니?' 하며 강아지 사진을 보냈다. 혼자 끙끙대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가 어머니께 뜬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펫샵에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고, 난 그 아이들 보면 귀여움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 고통스러움이 느껴져서 하나도 안 귀엽다고. 태어나서도 문제인 건, 그 작은 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니, 놀 것이라곤 자기가 싸놓은 대변밖에 없고, 그걸 가지고 놀다가 똥을 먹는 식분증도 생기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에게 그 사진을 그만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놀라셨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전혀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하셨다. 어머니도 뜬장에 대해 알고는 이후로 나에게 일절 귀여운 강아지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하는 봉사활동에 더욱 관심을 보이셨다.


 그런 반응에 나는 더 놀랐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였다. 혼자 스트레스 받고 화낼 일이 아니었다. 나부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면 또 그 따뜻한 영향이 점점 퍼질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봉사활동과 임시보호였고, 그렇게 잔디를 입양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잔디처럼 새로운 가족을 만나길 바라서 잔디와 함께 지내면서 '뽀미'라는 아이를 임시보호하게 되었다. 뽀미는 입양이 확정된 아이여서 입양을 가기 전에 잠깐 머물 곳이 필요했었다. 2kg 정도 되는 작은 치와와였고, 슬개골 탈구 때문에 다리가 불편한 아이였다.


 정말 다양한 기간으로 임시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임시보호를 강아지 키워보는 체험으로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이 아이들에게는 중간에 내가 임시보호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집'이란 것을 경험한 후에 다시 돌아간 '보호소'의 생활은 정말 비참할 것이다.


 뽀미 덕에 잔디가 질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뽀미와 함께하는 일주일 동안 이 귀여운 관심쟁이들에게 최대한 비슷하게 관심을 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의 이 작은 관심들이 모여 우리 털복숭이 친구들이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