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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stin Seo Sep 04. 2022

화이트칼라도 안전하지 못하다.

I 사무직을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I

처음 직장에 들어왔을 때 적응을 도와주셨던 시니어 선배님이 계셨다. 선배님은 항상 좋은 말 해주시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습관이 있으셨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출근해서 바쁜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은 뒤 회사 인근 산책을 같이 나갔었다. 모처럼 가을 공기가 시원했을까 선배님께서는 과거의 추억이 떠올랐다면서 이것저것 말씀을 해주셨다. 


첫 번째 이야기는 주판이었다. 혹시 여러분은 주판이 어떤 물건인지 알까 싶다. 나도 어렸을 때 주판을 발판 삼아 스케이트처럼 탔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주산학원을 다니는 것을 종종 봤었다. 뭔가 아래위에 단추처럼 생긴 것이 달려있었던, 네모네모한 계산기 같은 느낌의 물건. 불과 30년 전만 해도 사무업무 중 회계팀의 꽃은 주판으로 하는 주산 놀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선배님의 말을 듣고는 설마 했다. 아니, 어떻게 매출과 실적을 일일이 손으로 계산하고 있단 말인가. 


전혀 믿지 못했다. 하지만 선배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한 부서에 한 명 정도는 주산 자격증이 있는 직원이 있어서 해당 직원이 재고표와 매출 그리고 영업이익을 스티커나 자석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사무실 게시판에 표시해줬다고 한다. 나에겐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정말 믿기진 않았지만 선배님은 과거를 회상하는 아련한 눈빛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땐 또 그랬지 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가셨다. 


"예전엔 지금과는 다르게 회사에 취직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산 자격증이 있다고 하면, 어느 기업에서나 모셔가려고 안달이었지.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니까?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내양이 사라질 때쯤인가? 같이 사라졌지 뭐야. 엑셀은 정말 대단한 프로그램이지. 컴퓨터가 세상을 정말 많이 바꿨어. 상경직 친구들의 일자리가 없어진 거지..."


두 번째 이야기는 타이피스트였다. 타이피스트는 지금도 있는 직업이 아닌가 싶으시겠지만,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이 만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는 타자기를 사용하고 일부는 그때도 발 빠르게 IBM 컴퓨터를 받아들여 전산작업을 했다고 한다. 타이피스트는 컴퓨터 자판이 아닌 타자기 자판을 주 업무로 하는 포지션이다. 선배님께서는 이 타이피스트도 부서마다 한 명은 꼭 있었다고 한다. 


열심히 자를 대고 만든 보고서 양식에 자기만의 보고서를 만든 뒤 타이피스트에게 맡기면, 그 직원은 그것을 타자기를 이용해서 말끔하게 보이게 만들어 줬다고 한다. 빨리 보고하기 위해서 음료도 사다줘야 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했다고 한다. 틀리면 수정액을 덧대고, 문법이나 단어도 타이피스트 직원이 교정해줬었다고 한다. 선배님께서 처음 입사했을 때에는 타이피스트가 있었는데, 갑자기 윈도우와 프린터가 나오게 되면서 타이피스트도 설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한때는 전산사무가 인기 있었던 학과였다고 하시면서, 아쉬워하셨다.


이렇듯 예전엔 한 사람이 담당이 되어하던 업무들이 점점 컴퓨터와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도 몇몇 부서의 성과목표는 인력감축이다. 매년 몇 명을 감축했는지를 목표로 한 해를 보내는 부서가 있다는 것이 무섭지 않은가? 제일 최우선으로 감축대상이 되는 곳은 업무가 단순하며 대체하기 쉬운 직무 대상이다. 가령 물류창고의 지게차와 안내원 대신 키오스크, 구매부서 인원 감축하고 만들어진 구매 발주 통합 프로그램, 기획부서의 직원 대신 개발된 협업 관리 툴과 같이 말이다. 장과 사무를 아우르며 인력감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점점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것이 더 이상 뉴스의 가십이 아니다.


정보화 사회 그리고 디지털 한 세상에 살고 있는 현시대에는 단순한 사무직은 도태되고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산 직원이 엑셀로 대체되는 1:1 대체에서, 타이피스트의 타이핑이 더 이상 고급 기술이 아니게 된 기술의 보편화 등의 과정을 거쳐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직업군은 프로그램 개발자와 프로그램 유지관리 직원 그리고 컴퓨터/자판기 개발자 등이다. 



우리 회사도 발전을 하려는 것일까 요즘 들어 협업 툴을 많이 도입하고 있다. 먼데이닷컴, 아사나, 플로우, 노션 등 다양한 협업 툴 중 우리 회사는 먼데이닷컴을 이용하게 됐다. 직원들이 처음에 사용할 때는 조금 불친절한 느낌이라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흐르니 이제는 먼데이닷컴을 확인하지 않거나 자료를 안 올리고 진행률을 못 맞추면 혼나기가 부지기수다. 


예전엔 보고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는 시간이 많이 들었다. 매일같이 취합 메일에 시달렸었던 과거가 점점 잊혀진다랄까? 관리자도 오히려 직접 먼데이닷컴의 대시보드를 회의용 모니터를 이용해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보니, 취합과 보고 보다는 점점 실무중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코로나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상황일까. 인력감축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조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프로젝트 관리가 투명화되고 개개별 프로젝트 관리를 해서일까, 프로젝트 관리를 전담하던 회사의 꽃인 기획부서와 전략부서의 규모 그리고 부서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다. 우리회사만 보더라도 이렇게 급진적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한 나는, 앞으로도 사무업무의 일부가 보다 빠르게 프로그램과 협업 툴 그리고 기계로 대체될 것 같다.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미 입사를 한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주어진 삶에 적응하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수용하라. 
적응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 빌게이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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