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stin Seo Oct 10. 2022

과연 문과는 사라질 것인가?

나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왜 기업들은 공대생을 선호하는가?》는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기업의 공대생 선호 사례
2. 21세기 대한민국 인문계의 현상황
3. 공대생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
4. 현시점, 인문계를 위한 기회 모색

이번 포스팅은 챕터 4의 이야기로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참가를 위하여 미리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렸을  자연 다큐멘터리와 사극 그리고 인문학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부모님이 이상했다.  보기에도 지루해 보였으며  재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나서서 인문학 강의를 찾아보고 듣는다. 자라나면서 입맛처럼 방송 취향도 달라지는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인문학 강의를 찾아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글을 배우고 쓰기 시작할 때부터 과학자와 발명가가 꿈이었다. 그 길로 고등학생 때는 이과생이 되었고, 대학교는 공대를 나왔다. 한평생 숫자와 이론에 대해서 공부하며, 물리와 화학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했다.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서 수도꼭지를 틀면 이 물은 어디서 왔을까가 떠올랐고, 변기에 내려가는 물을 보면서 호주에 가면 진짜 시계방향으로 물이 내려갈까 등 지구 자전과 사이펀을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도 항상 굶주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의사소통이다. 가볍게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에는 당사자와 상대방간의 인문학적 소양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제와 목적이 있는 자리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에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주로 단어의 선택과 쓰는 어휘의 다양성 등이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된다. 얼마 전 동기들과 점심을 함께 할 때였다. 모처럼 새로운 CEO가 와서 대화가 재미나게 흘러갔다. 과연 어떻게 조직이 개편될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회사의 방향성이 달라질지 등이었다. 나는 이때 동기들이 쓰는 단어들이 무척이나 신기했는데, 특히 헤게모니라는 단어가 그중 하나다.


신임 CEO의 과거 전례로 봤을 때 다소 문화적 헤게모니를 주장했다고 한다더라, 근데 지금은 그룹 CEO의 오더로 정치적 헤게모니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더라 등 난해하게 말해서 전혀 이해를 못 했었다.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단어를 모르니 대화의 맥락을 못 짚어서, 이해를 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책을 읽지 않아서 저 단어를 몰랐을까? 아니다. 나도 꽤 많은 책들을 읽어왔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분야가 다른 공대 책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어휘가 달라서 대화에 끼질 못했던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공감능력에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공과생과 문과생을 딱 봤을 때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어휘 그리고 공감능력에서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수년간 신입사원 면접에 참여해서 지원자들을 보면서 알게 된 부분이다. 가령 의사소통 능력은 여성-문과생, 남성-문과생, 여성-공대생, 남성-공대생 순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하나 같이 이렇게 말을 잘했다.

어휘도 마찬가지였으나, 공감능력은 조금 달랐다. 공감능력에서는 여성-문과생, 여성-공대생, 남성-문과생, 남성-공대생 순이었다. 객관적인 자료는 없음에도 대부분이 공감되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4순위에 있었고, 항상 회의를 진행할 때 기승전결이 딱딱 들어맞길 기대한다. 어떤 잘못이 있을 경우 그냥 어물쩍 넘어가기보단 내가 잘못한 것과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명확히 구분하길 원했다. 상사가 농담을 할 경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내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다고 한다.


이처럼 남자이면서 공대생인 나 자신을 한 단계 밸류업을 시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했다. 자신만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 요즘 인문학 강의를 자주 챙겨본다. 처음에는 역사에서부터 미술사학, 전쟁사, 심리학까지 전반적으로 시청하고 있다. 대화에 끼고 싶어서 그리고 나도 저렇게 멋지게 말해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 누구보다 아인슈타인의 생애와 상대성이론에 대해서 쉽게 풀어서 말할 수 있지만, 지적이고 교양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는 무시하기 어려운 것 같다. 달리 말해 요즘 들어 공대생 위주로 사회가 돌아가니, 인문계열에 대해 사회가 다소 소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숏 콘텐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장문의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부족하다는 매스컴의 지적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요즘 세대의 문제점이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이다는 비평가의 말도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소통의 단절을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기사를 읽어보니 20~30대 직장인들이 업무상 전화도 부담스러워해서 문자와 메신저로 업무를 하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나도 30대가 되었고, 직장을 다닌 지 5년이 돼가는 시점에 저 기사가 마냥 거부감 들지는 않았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기업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문자와 메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을 선호할 때가 있다.


주로 무책임한 직원들과 협업을 할 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방법인데, 나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보이는 경우 자기 방어를 위해 주로 사용한다. 지금 입사하는 90년대생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기를 꺼려하지만, 피해를 받는 것은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주변 동년배의 직장인들한테 물어봐도 비슷한 답변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호의적인 사람이라면 그 누가 전화하길 꺼려하겠는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전화를 안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건 엮이기 싫을 때와 거리를 두고 싶을 때라면서 말이다.


이렇듯 나와 비슷한 또래를 가진 지금 20~30대, 90년 대생들은 자기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상사 등 직장동료와 소통을 줄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만약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앞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신규 세대도 인문계보다 공과생들이 많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소통에 대한 니즈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기 완전 당나라 군대 같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흔히들 오합지졸에 대한 의미로 사용하는 말인데, 서기 660년 신라군이 처음 만난 당나라군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소란스러운 부대였던 모양입니다. 단일민족으로 군기가 엄정했던 신라군의 눈에는 당나라군이 군기가 엉망인 군대로 보였을 거라는 설로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통이 결여되거나 부족한 조직은 엉성하게 보일 수 있으며, 방향성을 제시할 때 중구난방으로 조직의 목적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기술의 발전과 영업이익을 위하여 소통의 중요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기업의 입장과 국가의 입장이 성장이란 궁극적인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소하게 보이는 소통능력을 괄시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우리 사회는 다양한 세대와 여러 사상들로 사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다양한 구성원들을 한 팀으로 묶어서 일을 하다 보면 분명 소통에서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구성원 하나하나의 소통 부재가 큰 조직인 기업과 국가를 움직일 때 큰 부작용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기업들과 국가 주요 부처에서는 소통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조직을 꾸려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투명성을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라 생각합니다. 조직과 국가의 소통을 원하는 국민들은 데이터 하나하나 의사결정까지 투명하고 합리적이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결국 충분한 소통을 진행하여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부분이 될 것입니다. 점점 더 국가와 기업 모두 조직원들과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소통에 집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나 기업이 성장만을 쫓다 보니 부작용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갑자기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구성원 간 소통을 위해서 별도의 부서와 전담 팀을 만들었습니다. 회사가 지난 수년간 외형적 성장을 크게 했었는데, 그와 함께 내형 성장을 이뤄냈는가에 대한 CEO의 고민이 담겨 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로 엄청난 발전을 해왔음이 분명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적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러한 발전을 위해서 묵묵히 일만 하면 된다는 악습도 만들어 낸 것이죠. 구성원 간 소통보다는 탑 다운으로 이뤄지는 명령과 수명에 익숙해진 조직원들이 과연 스스로 소통을 하려고 할까요? 어쩌면 지금의 세대교체가 이런 이슈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가 이제야 공론화된 것은 아닐까요?

대부분의 기업들은 핵심가치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더 소통을 강조할 것입니다. 지난 IT 스타트업 대표랑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전이 명확했던 스타트업이라 인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서울대와 카이스트 공대생들로 구성되었으며, 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외부자본도 유치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표도 기술자였습니다. 스타트업 대표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공대생들로만 이뤄지니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가는데 정말 속전속결이었다. 기술에 대한 생각과 어려움들을 서로서로 이해하다 보니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진다고 말이죠.


다만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너무 기술에만 몰두한 나머지, 상품화를 등한시하게 됐다는 것이죠. 기술의 순수성이랄까요? 그런 완벽성에 집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래처와 협의를 할 때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납기일이 지체되더라도 완벽함을 추구한다 하여 거래처에서 계약해지까지 말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대생들로만 모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나왔던 장면처럼, 전문경영인의 목표는 공대생 직원들을 '워워'시키고 본래 목적성에 따라 일이 진행되게 만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스타트업이 연구소도 아니고 기술에 대한 순수성을 논하기엔 기업의 존폐가 중요하니까요. 이런 사례처럼 공대생만 주야장천 뽑는다고 하여, 무작정 기업에게 좋은 점이 있다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쩌면 제조업 기반 국가의 비애라고 할까요. 제조를 위해서는 공대생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누군가는 기업의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하고, 의사결정이 이뤄진 사안에 대해서는 조직 내 소통을 해야 하는 그런 역할을 맡을 사람이 필요하게 되겠죠. 저는 그 부분에서 인문계열 인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력 육성을 지금과 같이 공대 계열만 하게 된다면, 범국가적으로 소통의 부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것이 제 나름대로의 시선입니다. 없어져서는 안 되고, 없어서도 안될 부분이 인문사회계열입니다. 나중에는 결국 인문계 전공자들이 없어서 인력수급이 안된다는 사회이슈가 대두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분명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의사소통을 해왔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다시금 인문사회계열찬란하게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 랄프 왈도 에미슨 -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관련기사



이전 10화 인문계를 가면, 인생 망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