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을 물었는데 김장과 간장이라니
돌이켜보니 지금까지의 인생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거짓말을 해서 동생과 함께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으며 눈물이 쏙 나도록 혼이 날 때는 물론이고, 초등시절 내내 잦은 전학으로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환경은 교감신경의 활성화로 직결되었다.
성적과 교우관계로 고민이었던 중등시절에는 시끌벅적했던 교실보다 침묵으로 조용했던 집안이 더 긴장되었다. 너도나도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목표이던 고등 입시의 현실에는 체육은 사라지고, 모두가 C커브의 등을 만들어냈다. 수업과 자습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인 짧은 10분 동안에는 잠시 눈을 붙이느라 등을 펴지 못했다.
대학에서는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취업해서는 결혼준비를 하느라 휴일은 반납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2시간 걸리는 회사로 출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하철이 도착하고 있다는 방송이 역에 울려 퍼지면 모두가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내려 갔는데 만삭에도 내 다리는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와서 내 생체리듬은 신생아와 똑같아졌다. 아기가 엥 울면 자다가도 눈이 떠지며 바로 몸을 일으켰고, 일자 어깨는 사라지며 승모근은 매일 뭉쳐있었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한 번에 여러 요구사항이 들어오면 몸이 하나인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어깨는 한껏 치솟았다.
아이들이 제법 성장하고 이제는 여유를 느껴도 될법한 시기이지만 셋 중에 한두 명만 아파서 열이 나도 느슨해지려는 나의 긴장상태는 아주 빠르게 돌아와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몸 구석구석 통증이 느껴질 무렵 살기 위해 시작한 필라테스에서 강사님은 나에게 흡사 톰슨가젤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초식성 동물인 톰슨가젤은 사자나 표범과 같은 천적으로부터 도망 다니느라 아주 재빠른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충분히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비유였다. 건물의 3층에 위치해 있던 필라테스 센터에서 운동을 마치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빠르게 복귀하느라 승강기가 아닌 비상계단으로 총알같이 향했다.
집안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언제 어디에서 다쳤는지도 모르는 상처를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현실 속 아이들은 나를 잡아먹는 맹수가 아님에도 뭐가 그리 급하다고 고무장갑을 장식만 해둔 채 착용하지 않아서 한포진 증상을 얻게 된 것도 모두 내가 만든 것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던 어느 날 마주 앉아 있던 아이들은 전혀 긴장상태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교감신경만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호기심에 '긴장'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법한 첫째와 둘째 아이에게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먼저 만 8세인 첫째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긴장되니? 집이나 다른 상황에서?"
다른데 집중하고 있던 아이는 순간 잘못 들었는지 나에게 되물었다.
"김장?"
"김장이 아니고 긴장되냐고..."
"아, 떨리는 거? 그런 거 없는데."
싱겁게 끝나버린 대화가 아쉬웠는지 나는 이번에 옆에 있던 만 6세 둘째 아이에게 물었다. 아들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침 어제 아빠와 다툰 일로 배우자가 아들과 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혹시 긴장되는 일이 있니?"
"아니요, 간장이나 더 주세요."
권위가 없던 아빠는 아들에게 타격감을 하나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아들은 이런 말도 했다. 아빠가 어제는 나와 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잘 깜빡하니까 오늘은 다시 말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질문거리도 안 되는 걸 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행스러웠다. 한국사회에서는 앞으로 더 성장하며 알게 모르게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상황을 맞닥뜨릴 텐데 아이들이 집에서만은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에서 소주를 마시는 손님에게 옥수수수염차를 대신 내어주며 소통을 하는 독고씨처럼 아이들에게 집은 힘든 하루를 털어낼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