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힘든데, 안 하면 더 힘들어요.
옛 어른들은 강렬하면서도 짧은 고통인 출산의 기억이 잊히기에 아이를 낳고 또 낳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2023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이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2015년, 2017년, 2018년 이렇게 세 번의 출산이 모두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옛 선조들처럼 고통의 순간이 잊힌 때가 있었는데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아이의 샤워와 샴푸 여부를 외관상 쉽게 확인할 수 있기에 빠지지 않는 잔소리 중 하나였던 반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양치질 여부는 어떤 것보다도 어린이의 양심에 달려있었다.
씻는 행위가 점점 귀찮아지는 초등 4학년의 구강검진에서 충치세균이 처음 발견되고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간 치과에서 원치 앉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온갖 날카로운 소리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누워있던 베드에서는 앞으로 양치질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큰맘 먹고 딸의 치아를 골드로 씌워주신 부모님의 투자에 부응하지 못해 아쉽지만 어린이의 다짐은 딱 한 달 정도 지속되었다. 이후로 원치 않는 치과행은 몇 번 더 이어졌고, 그 결과 다 큰 성인이 되었지만 치과의 'ㅊ'만 떠올려도 벌벌 떠는 사람으로 생존해가고 있다.
세 번째 출산을 마친 지 4년 정도 흐른 30대 여자의 몸무게는 첫 번째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몸무게였다. 아이를 안아주고, 수유하며 수시로 쪼그려 앉아 육아하던 일상에서는 점점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잊어가고 있었다. 서있을 때 힙시트를 하지 않아도 두둑한 뱃살 앞에 투명 힙시트가 있는듯한 자세는 서서히 몸에서 신호를 보냈다.
허리통증으로 걷는 것도 뒤뚱뒤뚱 우스운 모양새가 되어버린 날 더는 내 몸을 방치할 수 없겠다는 강렬한 생각에 집 근처 필라테스 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50분씩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니 점차 통증은 없어지고 어느새 일 년이 흘렀다.
조금 살만해지니 힘들게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필라테스를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내면의 속삭임에 넘어가고 싶어서 한 달 정도 쉬었다. 그러나 몸은 움직여주지 않아 다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순간 10대에 꾸준한 양치질을 다짐하고 실패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더 이상 과오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땀을 흘리며 귀찮은 운동을 할 때엔 긴 머리는 대역죄인이 되고, 노랗던 얼굴은 거울 속에서 홍당무가 되어 당혹스럽다. 30분이 넘어가면 팔자타령을 하며 필라테스는 힘든 것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지만 아예 하지 않으면 몸이 아파온다는 것을 알기에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육아하며 장착된 역마살은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는데 걸림돌이었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었던 여자 사람은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강사의 수업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대형 센터에서 필라테스 그룹레슨을 등록하면 나에게 맞는 강사를 찾기 위해 순회공연하듯이 여러 수업을 경험해 본다고 들었지만 나의 경우에는 개인레슨이었다. 그것도 같은 센터에서 일 년 넘게 마주했던 강사님이 고스란히 계신데 다른 강사님에게 레슨 받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