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높은 9센티 하이힐을 신었던 때는 결혼식날 단 하루였다.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동기가 신었던 뾰족구두에 영감을 받아 7센티 스틸레토 힐을 신은 채 캠퍼스를 활보했다. 하이힐을 신고 아침저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뛰어다녀도 힘든 줄 몰랐던 것은 당시 풋풋한 새내기만의 특권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굽의 높이는 점점 내려왔다. 5센티에서 3센티, 플랫슈즈까지 거쳤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찾게 되는 것은 폭신폭신한 운동화였다. 세 번째 출산을 한 여름에는 절대 신지 않을 것만 같던 국민신발 크록스에 입문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크록스스럽지 않아 보였던 라이트라이드 모델은 구세주였다.
이제 구두는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만 겨우 신발장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마저도 오고 가며 운전할 때 별도로 신을 수 있는 편한 신발을 꼭 챙겨서 실제 구두를 착용한 시간은 1시간 정도였다. 사계절용 운동화와 여름용 샌들 한 켤레로 일 년을 살아내는 여성은 필라테스를 하며 그동안 잊고 지낸 중력을 느낀 하루가 있었다.
필라테스 기구인 리포머에서 마지막 동작인 프런트스플릿(Front Split)과 포워드런지(Forward Lunge) 순서가 되어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처음 입문했을 때만 캐리지 중앙에 올라서서 오른발은 풋바 위에 올리고 왼발은 왼쪽 숄더 블록 모서리에 발날의 중앙을 위치시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른발의 발바닥을 풋바 위에 올리고 그동안 동작을 수행했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 초심자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강사님의 큐잉이 정석대로 바뀌었다.
"오른발의 발가락을 풋바 위로 올리고, 뒤꿈치를 계속 올린 채 동작을 해볼까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이 동작을 주문하신 걸까'
어쨌거나 몸을 움직이러 센터에 온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인풋이 들어왔으면 아웃풋을 내놓는 수밖에 없는데 그간 신어온 신발들을 떠올리면 땅에 착 붙어 뒤꿈치를 들어 올릴 일은 거의 없었으니 원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가락을 굽히고) 뒤꿈치를 높이 들어보세요."
'발가락아 제발 주름을 보여줘'
"지금 4센티입니다. 조금 더!"
"7센티네요. 9센티 가볼까요?"
입술을 앙 다문채 캐리지를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마음과는 달리 높이 유지되지 않는 뒤꿈치가 느껴지던 순간 나도 모르게 해내고 싶은 의지를 표현하고야 말았다.
'훗'
'핫'
'호잇'
이것은 몸을 움직이며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입에서 나는 소리였다.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던 사람을 지켜보던 강사님도 모를 수가 없었다. 동시에 웃음이 터져버린 순간 떠오른 것은 9센티 하이힐을 신었던 결혼식날이었다.
'사실 전 9센티 웨딩슈즈도 본식 사진촬영 후 벗어던지려다 고이 들고 맨발로 퇴장했던 신부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