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바는 말이지요

FREEDOM

by 쥐방울

한국인의 흔한 안부인사 중 대표적인 것은 언제 한번 밥 한 끼 먹자는 것인데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밥이 차로 바뀌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언제가 정말로 오긴 할 때도 있지만 그저 말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느껴져서 실제 스스로는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 말들이 되어버렸다.


필라테스 개인레슨을 시작하면서 매수업 시 동작과 난이도를 조절하기 위해 강사는 컨디션을 물었는데 그제야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 생각지도 못했던 하루를 눈알 굴리며 돌이켜보느라 대답하는데 몇 초간의 공백이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의 대답은 거의 이러했다. "양호합니다."


사실 좋지 않은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매번 좋지 않다고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았다. 운동을 하러 왔는데 매번 오늘 하루 지독히도 지쳐있다는 사람을 알맞은 정도로 운동시킬 수도 없을 테고, 힘든 이유를 물으면 이어지는 스몰토크를 할 자신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앞에 있는 강사를 속이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속여가며 양호한 컨디션의 탈을 쓴 사람은 몸을 움직이지만 몸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호흡이 가빠오는 것은 물론, 매달리기나 무릎을 들고 동작을 할 때면 머리가 띵해지며 안구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필라테스에서 근력운동이 수영처럼 관절에 안전하다고 하는 이유는 헬스장에서 하는 웨이트처럼 강한 무게를 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 무게가 자신의 체중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곧 제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고 실토하는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양호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지옥을 맛본 후 국어사전에서 '양호하다'라는 뜻을 찾아보았다. 초등국어사전 속 '양호하다'에 '상당히 좋다'라고 쓰인 글자를 보며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좋은 것도 아니고 상당히 좋다니 이건 확실히 아니었는데 말이다.


밥 한 끼 하자는 말뿐인 인사치레와 다를 게 없었다. 이후 깨달음이 있었다고 사람이 한 번에 달라질 수는 없었다. '상당히 좋다'는 의미인 '양호하다'에서 (그냥)'좋다'라는 답변으로 내면의 나와 잠정적 합의를 보았다.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좋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처음으로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발언한 날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감기에 걸려 밥을 차리고, 약을 챙기기를 반복했었다. 세 아이의 약을 용량대로 합치기를 반복하면 하루종일 약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밤이 되면 또 체온이 오르진 않을까 체온계를 들고 간호사 놀이를 했다.


잘 못 자고 잘 못 먹으면 당연히 컨디션은 좋을 수가 없는 것인데 이것 자체를 알아차리는 데에 굉장히 낯설었고, 스스로를 챙김에 있어 미숙했었다. 침대처럼 생긴 캐딜락 수업이었다면 바로 누워서 땅콩볼로 전체적인 근막이완을 예상했겠지만 이날은 필라테스의 메인기구인 리포머 수업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숄더블록 사이에 머리를 쏙 넣고 누워서 시작했을 수업인데 갑자기 1초 만에 수건을 가지고 등장하신 강사님은 풋바에 놓으며 후두골부터 아래방향으로 근막이완을 시작해 주셨다. 풋바위에서 후두골, 흉쇄유돌근과 상부승모근의 근막이완은 물론 겨드랑이와의 만남은 모든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그 자체였다.


각 부분마다 천천히 나만의 압으로 눌러주듯 이완시켜 주는 것은 확실히 두 눈이 뜨일 만큼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상체만 이런 만족감을 안겨주고 끝낼 수업이 아니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하체였다.

"앞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리를 쫘악 스트레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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