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뭐야?"
어느 날 갑자기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이어서 말한다.
"슬프지 않고 기분이 좋은 거야?"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행복이 뭘까?'
나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맞은 후 사후 세계가 있다면, 그리고 사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다시 태어나기 위한 선택을 할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아니다. 힘이 들었다. 경쟁이 싫었다. 마음은 언제나 감정에 휩쓸려 어긋나기 일쑤였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나도 모르게 생기는 시기심과 질투심은 참기가 힘들고 타인의 슬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도 고통스럽다. 내면이 아닌 외부의 눈에 보이고 잡히는 것에 몰두하고 가지려는 것은 언제나 큰 공허함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고통은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족하다. 남은 인생은 마음을 갈고닦으며 수행하고 그만 태어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경쟁할 필요도, 감정에 휘둘릴 일도 없다. 무언가를 바라는 일도 없고 쫓던 것이 어긋나더라도 좌절할 일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혹은 그 상태로 명상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명상은 마음 수련에 매우 중요하지만 명상 자체가 행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나 스스로 무(無) 임을 느끼는 것. 스스로 무가 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다가 갑자기 죽음이 곧 행복이 된다고 한다면 너무나도 가혹한 비약이다. 무가 된다는 것은 만물이 무에서 시작하여 무로 끝나며 나 역시 만물의 하나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즉, 허무를 아는 것, 그리고 하나뿐인 존재임을 느끼는 것. 그래서 내면의 고요함을 찾고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휘둘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허무의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은 어떨까. 어떻게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최소한 그 근처까지라도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고민한다. 하나는 가르침을 받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경험이다. 가르침을 받는 것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 의문에 조금이라도 암시를 줄 수 있으면 족하다.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곧 나의 스승이 될 수 있음이다. 사물, 동식물에게서도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조금 더 가까이 지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다. 이는 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경험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대에 따라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고, 한 가지 경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끼고 깨닫는 바가 다르다. 나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고생'의 의미는 '일탈'이 아니다. 불필요하게 시간만 낭비하고 득이 없는 일들도 이 '고생'이 아니다. 고생은 목적이 있고 기한을 정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과 끝에 얻는 바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배낭여행(또는 전국일주 같은)을 간다거나, 수일 동안 대피소에서 묵어가며 산을 오르는 거다. 나는 수능시험 후 대학에 입학하기 전 겨울에 잠시 일용직으로 일을 한 적도 있다. 돈을 벌어서 좋기도 했지만,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싶었다. 그때 인력사무소의 소장님과 근로자들을 보고 '돈'이라는 것에 영원히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음을 알았다. 한 개인의 성품이 '돈'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에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고생을 하면 인생의 노선에서 왠지 더 멀리 돌아가는 것 같고, 어쩌면 실제로 다른 면에서 상대적으로 늦을 수 있다. 몹시 힘이 들지만 반드시 그 과정에서만 보고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는다. 힘이 들수록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깊은 인연으로 남는다. '고생'은 보이지 않는 다른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를 찾는다. 의미를 찾았을 때 행복은 비로소 내게 오고, 내가 그에 가까워진다. 고생은 타의가 아닌 자의로 선택할수록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이 과정들은 내 영혼과 의식을 맑게 정화하여 잡념을 떨쳐내고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리고 거듭되는 고민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분별력을 갖도록 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쉬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때로는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넓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다.
다시, 행복에 대해 사유한다.
허무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허무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허무를 알면 강약 조절이 가능해진다. 버릴 것은 버리고 득 할 수 있는 것은 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
행복이란 마치 인생 어딘가의 끝에 매달려 있어서 지금 당장은 얻을 수 없고, 행복이라는 열매를 취하기 위해 인생동안 끊임없이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고 달리다 보면 마치 그 끝에 도달하여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열매는 행복이 아니라 머리를 얼얼하게 울리는 깨달음에 가깝다. 깨달음으로 가는 일생의 과정에서 수많은 기쁨과 슬픔, 좌절, 혼란 등의 감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마음을 다잡아서 때로는 더 거대한 빛을 밝히고, 때로는 희미한 한 줄기 빛을 찾아내는 것. 솟아날 구멍을 찾아내고 이겨내어 성장하는 과정이 모두 행복이다. 행복은 열매가 아니라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다. 언제나 행복할 수도 없으며, 항상 불행하지도 않다. 행복은 내 마음을 어떻게 고쳐먹느냐에 따라 내 주변을 맴돌고 나를 따라다닌다.
주위에 맴도는 행복을 얼마나 자주 찾아내는지가 핵심이다. 들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를 보고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감히 행복한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행복은 가까이 있다는 말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