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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엽 Aug 08. 2023

애정해 마다치 않으므로.

애정해 마다치 않으므로.



실은 해줄 말이 그리 많지 않다. 네게 온정은 찢긴 마음을 틀어막는 수단에 불과해서, 만원 버스에 촘촘히 쌓인 아무개의 체취처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사랑은 존재해. 그래, 그래서 사랑은…!” 되뇔 때마다 엉망이 되는 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침을 꼴깍 삼키고 혀뿌리가 아플 정도로 바짝 들린 혀를 입천장에 붙이니, 그제야 그립단 말이 목구멍 뒤로 넘었다. 쇠 막대를 핥는 거처럼 비릿한 맛이 났다.



있지. 애정이란 게 온전하다는 전제하에, 나로 인해 상처받는 타인을 보는 것만큼 고된 일이 있을까? 아픔을 상쇄하는 아픔의 연속. 이걸 치유의 과정이라 불러도 괜찮은 건가.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유한한 고통의 전가에 가깝지 않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할 수 있다면 뭐, 기꺼이 상처받고 덤벼들 각오나 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맘이 눈동냥으로 익힌 사랑을 흉내라도 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함으로 가득해. 너는 싫은 표정을 짓겠지만 말이야.



영원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원하고 만다. 이처럼 모순된 욕구가 넘실댈 때면 새벽녘 인적 없는 외곽 도로를 걷는 기분이다. 안개가 자욱한 밤거리에서 호의를 베풀 누군가 만난다는 건 기적이거나 겁먹은 이들의 사회적 타협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개인지 늑대인지도 모를 검은 그림자에 목을 물어뜯길 각오 정도는 있어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놀라 서로의 얼굴을 물어뜯지만 않아도 다행일 테다.



요컨대 이런 일련의 행위를 애정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밀알만 한 작은 고통이 남게 될 때까지 상처를 주고받는 무분별한 신뢰가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가 사랑이겠는가. 그들은 팔푼이거나 두려움을 모르는 초인이거나 여하튼 수식어가 길게 달라붙는 뜨끈한 사람이 틀림없다.



애정은 여름날 외출 후에 몸에 남은 잔열처럼, 숨차고 힘겨워도 근원에는 밝은 에너지가 담겨있기에 닿으면 가만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 이라고 썼다가 지우기로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보고 싶단 말도 어려운 세상에 무슨 글을 쓰고 있겠나. 그러니 다음 장은 쓰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 이름 모를 누구에게 약탈한 살점을 핏줄로 묶은 고깃덩어리 속에 숨어 안위를 지키기 급급하다. 그저 곁에 태어난 이에게 사랑을 던지는 거침없는 마음에 찬사를 보내자. 이러한 전위적 애정을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하는 것은 실로 위대한 해방이 아니겠는가.



P_신경쇠약의 초상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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