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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여유 Mar 08. 2024

남편이 넝마는 버리라고 말했다

"자기야, 이리 와봐 봐."

소파에서 빨래를 개고 있던 남편이 부른다.

"응, 왜?"하고 일단 가지 않고 거리를 둔다. 이런 경우에는 그동안 참고 있던 잔소리를 조곤조곤하게 건네는 경우가 많았다. 급하게 최근의 일들을 복기해 보아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모든 물건에는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J 성향의 남편은 신혼 초에는 종종 집안 상태에 대해 조언을 한 적이 있었다. 조언은 남편의 입장이고 나에게는 잔소리와 참견과 지적으로 느껴져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소동을 몇 차례 겪은 후 남편은 조언을 하지 않기 위해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외면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도 최대한 남편과 가까운 공간은 남편 취향에 맞게 물건의 자리를 정해주려 노력했다. 못 본 척을 해보아도, 참아보아도 아주 가끔씩은 '조언'을 하는 남편이라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 된다.

"그런 거 아니야. 일단 이리 와봐 봐." 경계하는 태도가 너무 드러났나. 평소에 다정한 편이지만 한껏 더 다정하게 꾸민 듯한 말투에 경계심은 더욱 올라간다. 살갑게 다가와 정겹게 말해도 잔소리는 잔소리다. 약을 아무리 달콤하게 코팅해 놓아도 본질은 쓴 것 아닌가. 잔소리의 ㅈ에도 진절머리를 치는 나에게 논리와 말발을 앞세운 남편의 잔소리는 매우 강력한 일격이 된다. 흘려도 보고 반격을 해봐도 타격을 입는 것은 내 쪽이다. 가끔 남편의 (잔소리 아닌) 조언을 들으며 만약 나의 사수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아마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지 하는 결론에 이른다. 경계를 미처 풀고 있지 않은 나에게 건넨 충격적인 남편의 한마디.


"솔직히 이건 넝마 아니야?" 하며 가리킨 곳에는 나의 최애 실내복이 있었다. 아니 최근에 바꾼 건데 무슨 소리야, 하며 반격하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넝마는 너무 한 거 아니니. 부드러워서 편한 티셔츠. 방학이라 더 자주 입어서인지 보풀도 꽤 일었다. 실은 실내복 용도로 산 것은 아니고 입던 옷 중에 바깥에서 입기 그럴 것 같은 것을 실내복으로 바꿔 입던 옷이었다. 부드러운 소재는 열에 약한지 세탁기와 건조기를 순회하고 나올 때마다 옷의 상태는 눈에 띄게 달라져 손이 덜 가던 옷이었다. 그렇다고 티셔츠를 매번 손빨래할 수도,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었다. 잘됐다 싶어 실내복으로 입으며 마음 편하게 세탁했다.

어째서 집에서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냐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전남친을 마주쳤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옷을 왜 남편에게는 스스럼없이 보여주냐는 것이었다. 글쓴이는 집 앞 분리수거장에서 마주쳤다고 해도 전남친에게는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도 싫고 목이 늘어진 티셔츠도 보여주기 싫다며 최상의 모습으로 마주치고 싶지 않냐고 반문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글을 읽고 나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마음 편안한 집안에서 남편 보라고 과하게 꾸미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구질하게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평소에 잘 시간쯤 집에 보게 되니 편한 옷 입은 모습만 마주 했었구나. 연애할 때처럼 꾸민 모습도 보여주며 살고 싶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아니지? 이 옷이 그래서 바꾼 실내복이었는데!!’ 그래도 부족했나. 넝마라니요! 자꾸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런 나를 보더니 넝마라고 말한 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옷이 필요하면 사주겠단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은 전개였다. 귀여운 꽃무늬 실내복이라도 사야 하는 건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다하자. 가족이나 친한 친구를 대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말이다. 남에게 받는 평가에는 민감하지 않은 편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찬사를 듣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정성을 다하려는 이유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 않는 행동이라면 소중한 사람에게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가깝고 편하다 보니 어느새 잊어버린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두루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매해 한 살씩 더 먹을수록 느끼는 것은 주변 가까운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잔소리를 싫어하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상대의 방식과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며 상대에 대해 예의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우재는 계속 '배려'라고 말했지만 우재가 알지 못하는 건 그해 늦봄 우재를 위한 마음으로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럼 그건 무엇이었을까? 어둑해진 천변에서 우재가 덮어준 재킷의 온기를 느끼며 그건 누구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일 뿐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눈부신 안부』백수린

어느 날 책을 읽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내 선의를 공격받았다고 느꼈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부정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 속 말이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표현의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하지만, 잔소리 실체가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고 책임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의 깊은 관심이었다니. 그동안 잔소리를 안 하던 것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으로 멋지게 배려하는 척하며 무관심하고 무신경했던 것은 아닐까 되짚어보았다. 좋든지 나쁘든지 그들의 선택이고 그러든지 말든지 결과는 알아서 감수해야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잔소리한다고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 귀찮아서 모르는 척했던 것도 같다. 실체를 알아차리고 슬쩍 반성도 했지만 아직 애정 어린 관심을 잔소리 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일단 옷을 사주겠다는 남편의 잔소리는 조금 달리 받아들여볼까 한다. "그럼 옷 사러 언제 갈까?"

진짜 이곳에도 넣을 수 없는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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