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우연히 두바이 초콜릿을 살 기회가 있었다. 11시쯤 되었나, 약속 장소를 향해 가고 있는데 긴 줄이 보였다. 웬 줄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두바이 초콜릿 팝업매장에 선 줄이었다.
'이게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는 두바이 초콜릿이구나!' 줄이 생각보다 짧길래 나도 한 번 사볼까 싶은 마음에 끝이 어딘가 두리번거렸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 안내하는 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여기는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고 줄이 저쪽 끝이라고 가리킨다. 손끝을 따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줄은 거의 백화점 전체 한 바퀴를 둘러 있었다. 오픈한 지 1시간도 안 되었는데 줄이 이렇게 길다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초콜릿을 사서 만나는 지인에게도 깜짝 선물을 하려던 나의 깜찍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요즘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인데 너무 얕봤다. 그래, 최신상 유행은 갖기 쉽지 않지. 그로부터 얼마 후, 약속이 있어서 성수동 브런치 카페에 갔는데 계산대 옆에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쓰인 무언가가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초콜릿이라기보단 빵에 가깝게 생겼다.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내가 예상한 두바이 초콜릿과는 좀 다르게 생겼다. 그래도 사람들은 줄을 한참 서서 사는 건데 이게 웬 횡재냐 하며 하나 사서 집으로 왔다. 한 입 먹어본 아이는 정말 맛있다며 감탄했다. 친구가 사준 편의점 초콜릿보다 배는 맛있다고 하니 사 온 보람이 있었다. 나도 한 입 먹어봤지만 왜 그렇게 인기인지 갸우뚱했다. 며칠 전에 백화점 지하에 갔다가 또 두바이 초콜릿 팝업 매장을 지났다. 이번에는 줄은커녕 구경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찾아보니 몇 달 전에 오픈런을 하고도 몇 시간씩 기다려야 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브랜드의 초콜릿이 맞다. 곧 가족 모임이 있는데 아무도 먹어보지 못했을 것 같아서 몇 개 샀다. 고르고 계산하는 동안 몇 사람이 들여다보긴 했지만 그중에 산 사람은 나를 제하고 한 명이 더 있었을 뿐이었다.
유행이 몇 달 만에 벌써 사그라든 건가. 이것도 반짝인기 먹거리 리스트에 오르는 걸까. 길 건너편에 마주 보며까지 생기던 탕후루 가게가 하나둘씩 없어진 것처럼, 모두가 탕후루만 먹나 싶더니 어느새 탕후루 가게에 사람이 거의 없는 것처럼. 두바이 초콜릿도 같은 수순을 밟게 된 걸까. 애초에 맛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다들 줄 서 있어서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새로운 맛이라고 소개해서, 다들 줄 서서 사 먹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먹었다 싶거나 한 번 먹어보고 나면 인기는 시들해진다. 남들이 다 해본 것은 소비할 이유가 남아있지 않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는 것이 능력이 되고 돈이 되는 시대다. 새롭고 신기한 경험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콘텐츠 중에 하나다.
사람들은 새로 문 여는 가게에 관심이 많다. SNS에도 신규 오픈한 카페나 빵집을 소개하는 게시물들이 많다. 한정된 물건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남들보다 먼저 접하고 싶어 하는 오픈런이 난 위험해 보인다. 아찔한 계곡에서 사진을 찍다가 나는 사고와 왜 연결되어 생각되는 걸까. 비약인 걸 알지만 모두 남들보다 한 발 앞서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 같이 느껴진다. 물건을 사는 물질적인 소비보다는 여행과 같은 경험을 위한 소비가 행복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말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충분히 경험에 소비하고 있다. 새로운 카페에 가서 새로 나온 빵을 먹고, 여행을 가서 새로 지은 펜션에 간다. 그런데 정말로 새로운 빵을 먹어보고 싶고 새로운 공간을 느껴보고 싶어서 가는 걸까? 나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남들보다 먼저 접하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든다. 나는 정말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걸까. 만약 그럴 때 핸드폰이 고장 나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도 만족도가 같을지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결국 한두 장의 사진 없이는 만족도가 같지 않다면 경험에 소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인플루언서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다 사고가 나고 심지어 실족사했다는 기사를 보면 쯧쯧, 혀를 차다가도 나라고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험은 이제 한두 장 사진에 박혀야 가치가 있는 물질이 되어버렸다. 경험의 탈을 쓰고 있어서 쉽게 눈치채지 못하고 있거나 애써 모르는 척할 뿐이다.
이건 SNS의 폐해일까? SNS가 좀 더 빠르고 쉽게 유행을 퍼뜨렸을 수는 있지만 전화만 있던 시절이라고 유행이 없진 않았다. SNS를 탈퇴하고 인터넷을 끊는 것이 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연결된 사람들과의 새로운 즐거움이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간접 경험의 범위는 대폭 넓어졌다. 다만 SNS가 내 삶을 지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경험들이 물질로 모두 바뀌지 않고 고유의 가치를 지녔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먼저 해본 새로운 경험을 나눈다면 과시가 아니라 공유였으면 한다. 한두 장의 사진에 박혀야 하는 경험일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 바람들을 SNS에 인증하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