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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력가? 웃기시네’

by rosa

24.



원장은 수지 메시지를 받고 서둘러 빌딩 일층 카페로 향했다. 갑자기 보자는 보호자의 호출은 언제나 불편했다. 대체로 센터를 옮기겠다는 말이어서 불안한 것이 일상이었다.

지만의 둘째 며느리 수지는 처음 센터에 시아버님을 모셔온 주보호자이다.

젠틀한 지만, 원장은 그의 등원이 반가웠다. 원생 어르신들도 소위 센터 물이 어떤지를 따진다. 물이 좋다고 소문난 곳으로 우르르 원생이 빠지기도 한다. 그들끼리 입소문에 킹카와 퀸카가 있고 CC도 있다. 지만의 등장 이후 소문 빠른 원장들의 인사전화를 받기도 했을 만큼 지만은 호감 형이었다. 오 년을 한 결 같이 일등으로 등원하는 원생대표 킹카 지만이 있어서 원장도 많은 힘을 얻고 있었다.


길옆으로 난 통창을 통해 진주색 샤넬 울 코트 안쪽에 구찌 실크 스카프를 두른 수지가 보였다. 먼저 도착한 그녀는 목도리도마뱀 마냥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두고 있는 수지를 향해 원장도 아메리카노 담은 머그잔을 들고 가서 앉았다.


“우리 아버님 여자 친구 생겼어요?”


다짜고짜 본론을 시작하는 수지. 원장은 곧바로 연이를 떠올렸으나 모르는 척 되물었다.

“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지난번 눈 많이 오던 날 지하주차장에서 원장님과 아버님이 연이아주머니랑 함께 차에 있는 걸 봤어요. 아버님이 재력가인 거 알고 그 아주머니가 꼬리 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재력가? 웃기시네.’ 성질대로라면 물 싸대기라도 갈기고 싶은 충동을 원장은 애써 눌렀다. 오래지 않았지만 두 어른의 품격 있는 교제를 은근히 응원하던 그녀에게 꼬리 친다는 표현이 몹시 거슬렸다. 원장은 천천히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뗐다.


“ 사 여사님이 아버님을 잘 챙겨드리는 것은 호의고 친절입니다. 인생을 오래 사신 어른들의 품위 있는 교제를 폄하하는 며느님 말씀을 아버님이 이해하실까요? 어르신 두 분은 모든 면에서 젊은 사람들 귀감이 되시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질문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는지요?

원장의 단호한 반박에 수지는 마땅한 대답이 준비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사실 꼬집을 만한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니 딱히 말할 것도 없었다. 수지는 아까와는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아니, 특별한 일이 있던 건 아니고 예전에 아버님이 이상한 여자랑 만나서 흉한 일을 겪은 적이 있거든요.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니까 염려돼서 하는 말이죠.”

“ 그렇다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 여사님은 우아한 분이에요. 이상한 여자 취급하는건 저도 불편합니다. 두 분 한 번도 예의에 벗어 난 모습을 보인적 없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좋은 벗이 되고 있습니다. 며느님도 좋은 눈으로 두 분을 응원해 주시면 어떨까요?”


개운치 않았지만 원장의 분명한 어조에서 수지는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원장이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연이가 이전 시아버지가 만나던 여자와는 다른 부류인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만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며 서둘러 인사하고 두 여자는 헤어졌다.


센터로 돌아온 원장, 연이와 지만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담소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인생 황혼 녘에 서로 의지하면서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한편 부러웠다. 자신은 저렇게 아름다운 황혼을 누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녀는 새록새록 어른들에게 힘을 보태야겠다고 혼자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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