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a Jun 05. 2024

소란한 고요 속에 주말이 지나고

29.     




  잔치 음식은 그대로 남았고 엄마일행은 돌아갔다. 선영은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씩씩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상황,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들이 단체로 치매가 왔나? 무엇보다 미수(米壽)도 넘은 나이에 하는 행동이 경솔하기 짝이 없는 지만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향한 분노는 점차 배신감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선수의 전화를 받았다. 돌아가는 동안에도 두 어른이 손을 꼭 잡고 갔다는 말을 들으며 선영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더는 견디지 못했다.  차 열쇠를 챙겨 들고나가 친정으로 달렸다.       

   

   “ 엄마, 자세히 얘기 좀 해보세요. 진짜 사귀는 거 맞아요?”

   “ 아니야 어르신이 기분 좋아서 좀 오버한 거야.”

   “ 엄마도 동의했다고 그러잖아요, 그 노인네가.”

   “ 노인네가 뭐야 버릇없게.”

   “ 편들어요?”

   “ 편은 무슨 아무 일도 아닌 거 가지고 웬 난리래, 사람 불러 놓고 그런 태도는 잘 한 거니?”    

 

  선영은 연이의 말을 들으며 사색이 되었다. 친구라는 말을 철석 같이 믿었는데, 그래서 친구 대접 해드리려고 했던 일이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던 터라 기막힌  와중에도 엄마는 노인 편을 드는 모습이 어처구니없어할 말을 잃었다. 노인도 연애를 하면 콩 꺼풀이 덮이나 보다 생각 들었다. 하루 자고 나면 어찌 될지 모를 나이에 그러고 싶을까, 선영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소파에 앉은 지만도 딸년 성질 머리가 고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화가 치솟았다. ‘우리 나이가 허락 맞고 연애 할 나이냐고, 어째 초대할 때부터 아들한테 허락받고 오라는 거부터 맘에 안 들었다’, ‘성격이 지랄 맞으니까 혼자 살지’ 라며 혼자 말을 아무렇게나 뱉었다. 먹은 음식이 체한 듯했다. 소화제를 두 알 꺼내 찬물을 벌컥 들이켜며 삼켰다.     


  연이는 어쩌고 있을지 신경이 쓰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손을 잡고 있었지만 연이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걱정되어 휴대전화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렀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건지 혹시 속상해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여 안절부절. 지만의 지옥 같은 주말이 더디게 흘렀다.  

   

  침대에 걸터앉은 연이도 착잡한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돌발적인 프러포즈부터 조심성 없는 행동까지 딸이 경악할 만도 했다. 그러나 어른을 그렇게 대접하는 딸에게도 실망이 컸다. 지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하며 울리는 전화를 그냥 두었다.


  지만에게 호감이 없다면 거짓이지만 사랑이라 말하기에는 확신이 없었다. 내 몸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두 늙은이가 사랑타령으로 자식들 앞에서 주책을 떤 것 같아 얼굴이 화끈대기도 했다.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 일을 어찌 수습해야 할지 연이는 눈앞이 깜깜했다.      

  해답 없는 고민이 주말 내내 연이를 괴롭혔다. 계속 울리는 전화기를 무음으로 바꾸고 문자도 읽지 않았다. 월요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딸은 돌아가서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소란한 고요 속에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쭈뼛거리며 밝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