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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07. 2024

엇갈린 오후

31.



  지루한 시간은 꿈틀꿈틀 흘러갔다.     

  지만은 변하지 않는 정성을 내어 보이면서도 구메구메 연이 눈치를 살폈다. 마음 같아서는 다 큰 자식에게 쓸모없는 늙은이 둘이 의기투합해서 살아보자 하고 싶은데.  돌아올 역풍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 진중하자. 더 정성을 기울이자 작심한 지만은 더 이상 연이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하지 말자 고 전략을 수정했을 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커가고 있음을 알았다. 애타는 지만의 마음을 연이가 알아줄 날을 고대하며 하루하루 참을 인(忍) 자를 써나갔다.   

      

  알람 통화는 지속하되 아주 간단한 안부만 물었다. 돌아오는 답도 짧았다. 그래도 전화를 받아주고 문자에 답을 주는 것 만해도 다행이다 위로했다. 자중하는 시간이 연이를 향한 스스로의 애정순도를 확인할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 새로운 사랑을 알고 절제하는 지금이 지만에게는 더없이 소중했다. 온종일 연이만을 생각하며 숨 쉬는 스스로를 대견하다 칭찬했다. 아침마다 연이를 위해 차를 만들며 ‘이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린다 해도 견딜 수 있다.’고 자신을 애써 격려하고 있었다.      

         


   “사 여사 힘들어도 허리 세우고 5분만 더 걸어 봐요”     


  연이 옆에 보조를 맞춰 걷는 지만이 다정한 응원을 보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하면 운동이 필수라고 믿는 지만은 자진해서 연이의 트레이너로 나섰다. 평생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살아온 지만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세가 바르다. 아직도 마음은 베트남 전장을 누비던 그때와 다르지 다. 연이의 굽은 허리가 기적처럼 펴지기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결국 연이를 러닝머신에 올리는 것까지 이루어냈다. 참 오랜 설득이 필요했다.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정작 건강에 필수인  운동을 게을리하는 것 하나가 지만의 눈에 거슬렸다.          


   “ 헉, 헉 ”     


  5분을 더 걸으라는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 연이. 지만을 생각해서라도 5분, 아니 1분만이라도 더 걷고 싶었다. 파킨슨병을 앓는 연이에게 허리를 세우고 걸으라는 것은 김연아가 되라는 것과 다름없는 주문이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시켜 마지못해 기계에 올랐지만, 이 순간이 지나면 사고로 이어질 것을 불 보듯 한 상황, 결국 연이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아쉬워하는 지만을 향해 미안한 마음 담은 미소를 날렸다.       

    

   “ 조금씩 시간을 늘려 볼게요. 오늘은 더 못하겠어요.”

   “ 그래요. 무리하면 다치니까, 잘했어요 아주 잘했어요.”   


과장된 칭찬에 담긴 지만 뜨거운 사랑이 연이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목이 탔다.

지만이 내미는 텀블러. 아직 온기를 잃지 않은 보이차를  종이컵 두 개에 나누어 따랐다. '건배'  두 사람 건강하게 더 오래 살자는 소망을 마음으로 빌었다.


  나란히 안마 의자에 앉아 기계손 마사지를 받으며 지만은 이곳이 센터가 아니고 자기 집 거실이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말을 속으로 삼켰다. 연이는 무리한 허리통증을 달래 줄 파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엇갈린 오후, 햇살이 그들 사이를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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