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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06. 2024

연이 씨, 괜찮아요?

30.          



               

   “ 연이 씨, 괜찮아요?”     


  이틀 만에 만난 연이가 반쪽이 됐다.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보지 않았어도 얼굴을 보는 순간 지만은 경솔했던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 어르신, 호칭을 전에처럼 사여사로 바꿔주세요.”    

 

  여전히 조심스러운 어투였지만 단호함이 배어 있는 한마디에 지만은 움찔했다.  

        

   “ 연이 씨, 아니 사 여사.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연이 씨 아니 사여사가 많이 곤란했나 봅니다. 정말 미안해요.”

   “ 괜찮아요. 한 번은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만은 편해졌다는 연이의 말에 더럭 겁이 났다. 그녀의 침착함에 배어있는 냉기로 소름이 돋았다. 한마디 잘못하면 그동안 공들인 탑이 와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걱정에 지만은 입을 떼기 어려웠다. 그래도 연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여전히 궁금했다.


  오전동안 연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상냥한 태도로 다른 노인들과 프로그램에 따라 일상을 이어갔다. 허둥대는 것은 지만과 호식뿐. 호식도 연이의 냉기를 느꼈는지 멀찍이 피해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시간이 지나 오수시간, 연이가 지만을 불렀다.      

    

   “ 딸아이의 구나방 같은 행동을 대신 사과드립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나 신중하지 못한 어르신 행동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단호하게 어르신을 제지하지 못한 저도 잘못했습니다.”     


  지만은 연이의 다음 말을 예상 할 수 있었다. 그대로 있다가 연이가 안 보겠다고 할까 봐 두려웠다.    

      

   “ 연이 씨, 사 여사 제가 경솔했던 것 맞습니다. 그러나 연이 씨와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 마음이 진심이란 것은 알고 있다 믿어요.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 말아요, 제발.”     


  연이는 마른 입술로 힘겹게 전하는 늙은 남자의 진심을 쓸어 모아 가슴에 담았다. 남자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철들기 힘든 종족이 맞는가 보다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났다. 지만의 투박한 순수가 어쩌면 죽은 남편의 젊은 시절 포악과 맥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툭하니 상처부터 내어주는 모습과 마음을 그려내지 못하는 두 남자 공통점이 연이에게 어쩐지 익숙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선영과 선수가 단단히 마음을 잠가버린 일이 더 컸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빙산에 부딪친 느낌이랄까, 수면 아래 보이지 않는 빙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 분노의 방향과 크기를 알 수 없어서 연이는 불안했다. 엄마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아이들인 것을 누구보다 연이가 잘 안다. 그런 자식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때는 엄마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는 건데 이를 풀어갈 비책이 생각나지 않아 답답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이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선영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선영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단순히 생명을 준 사람이 아니었다. 일생 동안 바라본 여자라는 인간에 대한 기준이었다. 모든 가르침도 엄마에게서 배웠고 삶을 끌어가는 힘도 엄마를 통해서 배웠다. 연이는 선영의 멘토였다. 늘 지혜롭고 순수한 엄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았고 엄마의 말은 선영에게는 언제나 진리였다. 착한 딸보다는 좋은 스승을 둔 제자로 살아온 세월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기분이 들어 참담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더 크게 소리치며 선영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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